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사진)는 마거릿 미첼의 대작 소설을 뮤지컬로 만든 작품. 미국 남북전쟁이라는 역사적 소재를 다룬 지극히 미국적 소설이 원작으로 비비안 리, 클라크 게이블 주연의 1939년작 할리우드영화로 더 친숙하다. 그러나 막이 오르고 조금만 지나도 ‘프랑스 뮤지컬이구나’ 하는 느낌을 단번에 받을 수 있다. 화려한 무대와 의상, 앙상블이 아닌 전문 무용수를 통한 고난도의 브레이크댄스, 애크로배틱 등은 그동안 프랑스 뮤지컬에서 익숙하게 보아왔던 모습들이다. 프랑스 대중가요를 기반으로 한 뮤지컬 넘버들도 자연스럽게 입에 감돈다. 여기에 석양 속 스칼렛과 레트의 키스장면 등 영화 속 익숙했던 명장면들이 화려한 무대 장치와 어우러지며 이어진다. 쇼와 극의 결합이라는 면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그간 관객들이 프랑스산 뮤지컬에서 느껴왔고, 또 기대해왔던 시청각적 요소들을 만족시킬 만한 작품이다.
다만, 한편의 극으로서의 탄탄함이라는 부분에서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작품은 스칼렛의 인생에 격동의 시기였던 미 남북전쟁 시대의 사회상을 녹여낸 원작의 틀을 그대로 따라간다. 대농장 ‘타라’를 배경으로 첫사랑인 애슐리만을 바라보는 철없는 아가씨였던 스칼렛이 남북전쟁을 거치고, 레트 버틀러와의 사랑을 경험하면서 현대적 여성으로 성장해간다는 이야기. 이 중심 줄거리만 담아도 이미 2시간30분 남짓한 뮤지컬을 꽉 채우고도 넘칠 만한 내용이다.
그런데 작품은 여기에 당대 노예들의 삶과 이들의 자유의지, 전쟁으로 피폐해져가는 사회상 등 소설에 담겨있던 모든 것을 함께 풀어내려 했다. 심지어 볼거리를 위한 술집 군무, 전투 장면 등도 빠짐없이 등장한다. 욕심이 아닐 수 없다. 책으로는 1000쪽, 영화로는 3시간50분에 달하는 대작을 뮤지컬 한 편에 모두 담아내려다 보니 정작 이야기의 개연성이라는 부분에서 작품은 종종 길을 잃는다. 원작의 모든 것을 담으려하기보단 이야기의 개연성을 최대한 살리고, 뮤지컬만의 개성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것만 담아내는 ‘선택과 집중’의 묘가 아쉬워지는 부분이다.
음향에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대극장 뮤지컬이지만 프랑스 뮤지컬의 특성상 미리 녹음된 반주 음악(MR)을 사용했다. 덕분에 가요풍 음악과 잘 어울리는 강렬하고 풍부한 사운드를 만날 수 있지만 라이브의 생생함을 즐기는 관객이라면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겠다. 2월15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다. 5만∼14만원. (070) 4489-9550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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