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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칼럼] 내 안에도 갑질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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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1-11 20:51:00 수정 : 2015-01-11 20: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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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원·택배아저씨 등에 짜증·불친절…
일상 생활 속 ‘갑질’ 스스로 단속해야
자동차 운전을 잘하지 못해 늘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탄다. 사는 곳이 버스 정류장도 멀고 전철역과도 멀어서 택시를 탈 때가 많다. 택시를 타면 내가 먼저 말을 붙일 때도 있고 택시기사가 먼저 말을 붙일 때도 있다. 나는 혼자 무얼 생각하는 걸 좋아해 대개는 택시기사가 먼저 말을 붙여 온다.

최근처럼 말하기 좋은 사건들이 일어나면 더욱 그렇다. 그냥 얌전한 승객으로 듣기만 할 뿐이다. 대한항공의 ‘땅콩회항’ 후엔 거기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기사를 만났다. 주차장에서 아르바이트 학생을 무릎 꿇린 ‘백화점 모녀’ 사건이 알려지던 다음 날에도 같은 얘기를 들었다. 돈이 많으면 사람이 다 그러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뒤에 만난 택시기사는 신문에 나고 방송에 나온 가진 자들의 갑질에 대해서는 분개하면서도 길거리에서 자신이 다른 운전자들에 대해서 버릇처럼 거칠게 갑질 운전을 하고 있다는 것은 모르는 듯했다. 앞에 천천히 가는 차를 위협적으로 추월하면서 그 차를 운전하는 여성운전자에 대해서 사납게 말한다. 사회 속의 갑질에 분개하고 비난하면서도 자신이 길 위에서 하는 거친 교통위반과 신호등 앞에서의 무리한 끼어들기는 남보다 운전실력이 뛰어난 자신의 당연한 권리처럼 여긴다. 그 기사뿐만 아니라 운전에 능한 많은 남성운전자가 길 위에서 그런 마음이다.

일상생활에서라고 별다르겠는가. 내가 사는 동네는 매주 목요일에 분리수거를 한다. 한겨울 이른 아침에 집 안에서 나오는 생활폐품을 종류별로 구분해 분리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종이도 일반폐지와 상자와 같은 골판지 두 종류로 분리하고, 빈병도 교환할 때 돈이 되는 맥주병과 소주병 따로 잡병 따로 분리하고, 플라스틱과 페트를 분리하고, 알루미늄캔과 고철캔을 분리하고, 스티로폼과 비닐을 따로 내놓아야 한다. 우리집 쓰레기인데도 아파트 경비들이 새벽부터 아침까지 몇 시간 동안 주민들의 폐품분리를 돕는다.

그런데 이따금 여러 종류의 폐품을 한데 담아 와서 분리장 한군데 훅 쏟아놓고 그냥 가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그걸 뭐라고 하지도 못하고 분리를 돕는 경비들이 분리한다. 사람의 인격이 다시 보이는, 일상생활 속의 갑질 중에서도 아주 더럽고 치사한 갑질이다. 물건을 미처 받지 못해 그게 경비실에 맡겨져 있으면 무거운 물건이든 가벼운 물건이든 꼭 가져다 달라고 말한다. 말은 부탁이지만 주민으로서의 갑질이다.

이런 것들을 보고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하는 나는 일상생활 속에 그와 비슷한 갑질이 없었겠는가. 하는 일이 글을 쓰는 것이니 글을 가지고 부린 갑질이 여러 번 있었을 것이다. 

이순원 소설가
앞에서 얘기한 타인의 갑질은 대번에 눈에 보여도 나의 갑질은 원래 잘 생각이 나지 않는 법이다. 음식점에 가서 음식주문을 할 때 종업원은 내게 당연히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돈을 내는 손님이니까 아무런 의식도 없이 상대가 기분 상할 만큼 퉁명스럽게 주문했던 적은 없는가.

나이 젊은 종업원이나 아르바이트생에게 그야말로 아무 생각없이 반말로 음식을 주문하고 커피를 주문했던 적은 없었는가. 마트에 가서 물건을 고를 때, 고를 물건을 잘못 찾아서 누구에겐가 물을 때, 그리고 계산할 때 차례가 밀린다고, 또 계산이 늦어진다고, 자기가 잘못 골라온 물건을 그 자리에서 반납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부주의가 아니라 계산원의 잘못인 듯 짜증부린 적은 없었는가.

사실 따지고 보면 현대인 모두가 자기 위치에서의 감정노동자들이다. 기계를 만지고 기계와 싸우는 사람들이 기계에겐들 왜 화를 내고 내동댕이치고 싶은 마음이 없겠는가. 기계가 자기 말에 고분고분하지도 않고 을의 입장이 되어주지 않으니 기계에다가 풀지 못한 화를 엉뚱하게 내 주변의 을들에게 푼 적은 없었는가.

자신보다 약자적인 위치의 사람에게 물리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폭언하는 것만 갑질이 아니다. 세상에 대해, 이웃에 대해, 함께 더불어 사는 사람에 대해 불친절을 자신의 권리처럼 행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스스로 단속해야 할 일상 속의 갑질이 아니겠는가.

이순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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