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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 20년, 지방분권 현주소] 권한도 재정도 '2할'…갈 길 먼 풀뿌리 민주주의

입력 : 2015-01-01 06:00:00 수정 : 2015-01-02 18:3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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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집중 왜 못 벗어나나
‘2할의 자치.’

대한민국 지방자치제도의 수준을 자조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권한도 돈도 20%밖에 안 된다는 뜻이다. 국가와 지방사무, 지방자치단체 세입의 국세와 지방세 비율은 80%대 20%이다.

지방자치가 시작된 지 어느덧 20년이 됐다. 1991년 지방의회 의원선거가 치러진 이후 1995년 단체장의 주민 직선제가 부활했다. 제도적으로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필수요건을 갖췄지만, 성숙한 지방자치라고 하기에는 너무 미흡하다. 겉은 지방자치이지만 주요 인사권과 재정권은 중앙이 장악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제주특별자치도가 2015년 출범 10년차를 맞는다. 2006년 7월1일 제주특별자치도 출범식(오른쪽 사진) 모습과 2007년 2월 전국 최초로 창설된 제주특별자치도 자치경찰대 발대식 모습.
제주=임성준 기자
◆20%의 지방자치, 중앙에 집중된 권한과 돈줄

지자체의 열악한 재정 문제는 지방분권 실현을 가로막는 대표적 요인으로 꼽힌다. 지자체 자체사업 예산은 2008년 46.1%에서 올해 37.6%로 감소했다.

지자체가 전체 예산 중 지역 개발을 위해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을 자체사업 예산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도로시설 유지·보수 같은 고정비용이 포함된다. 지자체가 재량껏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은 10% 정도인 셈이다.

사업비가 부족해 주민들의 오랜 민원을 해결하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

대구 남구는 1980년대 도시 확장에 따라 마련된 이천동 미군부대 캠프 헨리 옆 골목 도로(폭 8m, 길이 200m) 개통 계획을 아직 추진하지 못했다. 대구 남구의 자체사업 예산은 7.7%. 전국 지자체 가운데 가장 낮다. 재정자립도 역시 10.12%로 최하위 수준이다.

행정자치부의 2014년 재정통합공시에 따르면 전국 지방자치단체 244곳 가운데 자치사업 비중이 10% 미만인 곳이 4곳(대구 남·동구, 대전 대덕구, 부산 북구)이었다. 10% 이상 20% 미만이 68곳, 20% 이상 30% 미만이 110곳이었다. 지자체 10곳 가운데 7곳은 예산의 30% 미만을 자체사업에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점점 늘어나는 국조보조사업은 지자체의 재정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함께 예산을 투입해 추진하는 국고보조사업은 현재 1000여개에 이른다. 2000년대 후반 40조원 규모의 국고보조사업은 2014년 60조원으로 확대됐지만, 국고보조율은 70%에서 60%로 낮아졌다. 중앙정부가 남의 돈인 지자체의 재정을 활용해 사업을 펼치는 셈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중앙정부 사업에 돈을 대느라 사실상 지자체가 쓸 수 있는 예산은 5%밖에 안 된다. 이 돈으로는 지자체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세출은 늘었지만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마련할 수 있는 세입은 한정돼 있다. 부동산 경기가 침체하면서 지방세의 주요 세원인 취득세와 재산세 수입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민선 1기 63%였던 재정자립도는 지난해 결산 기준 50.1%로 계속 하락하고 있다. 전국 244개 시·군·구 가운데 51%인 125곳은 지방세로 지자체 공무원 인건비도 해결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무상급식과 누리과정(3∼5살 보육료 지원)에서 나타난 중앙과 지방의 재원 갈등에서 보듯, 국가 차원의 복지정책이 늘어날수록 사회보장 비용 분담을 둘러싼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의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국가 차원의 복지 정책이 늘어날수록 지방정부의 복지재원 부담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국고보조사업에 대한 지방정부의 선택 자율성을 보장하고, 수용 가능한 합리적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파산으로 내몰린 지방재정, 지방자치 위기로

지자체의 부채 문제는 취약한 지방의 재정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지자체 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100조원을 넘어섰다. 지자체의 자체 부채는 26조1479억원, 지방공기업의 부채가 73조9666억원에 달한다.

전시성·선심성 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들이거나 호화 청사 건립, 낭비성 외유 등 예산낭비에 따른 것이다. 인천 월미은하레일이 대표적인 예이다. 850억원이 투입됐는데도 부실시공으로 판명 나면서 수년째 개통조차 못했다.

광주 서구 치평동의 광주세계광엑스포 주제관은 4년째 텅텅 비어있다. 광주시가 80억원을 들여 지상 3층, 전체면적 1169㎡ 규모로 지은 주제관의 하루 이용객은 고작 50명에 불과하다. 광엑스포 행사에 맞춰 설계돼 다른 용도의 대관이나 임대를 하지 못해서다. 유동 인구가 적은 외진 곳에 위치한 것도 잘못이다.

하지만 유지·관리에는 연간 2억5000만원 정도가 들고 있다. 운영·인건비가 연간 295억원이나 되는데도 수입은 10분의 1밖에 안 되는 것으로 분석된 경기 용인 경전철, 519억원을 들이고도 부실 경영 탓에 매각이 추진되는 충남 중부농축산물류센터도 예산낭비 사례로 불린다.

스스로 공무원 정원과 조직을 결정할 권한이 없는 것도 지방자치의 성숙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시·도 본청에 두는 실·국·본부의 설치와 그 분장사무는 해당 지자체의 조례로 정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만, 설치기준과 실·국장 등 보조·보좌기관의 직급기준은 지방자치법과 대통령령에 따르게 돼 있다. 지나치게 상세하고 세부적인 규정 탓에 사실상 지자체가 자율적인 자치조직권을 행사하기 어렵다.

중앙정부는 자치단체장이 바뀌면 ‘내 사람 심기’가 횡행해 무작정 풀어 줄 수는 없다고 말한다.

최우용 동아대 법학부 교수는 “상식을 벗어난 조직 구성에 대해서는 이미 재정적, 사법적 제재 수단이 마련돼 있고 주민소환과 주민투표, 주민소송, 주민감사청구 등 다양한 주민참여제도를 이용해서도 견제가 가능하다”며 “각 지역의 특수성, 지역성, 형편에 따라 달라야 하는 것이 지방자치다. 지방자치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 만큼 권한 이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울산시의원들이 지난달 27일 열린 제166회 2차 정례회 2차 본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울산시의회 제공
지방자치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지방선거는 오히려 지방자치 위기의 근본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 본래의 의미와 기능은 퇴색된 채 철저하게 정당의 ‘대리전’으로 치러진 때문이다. ‘대통령은 알아도 자신이 사는 지역의 구청장이나 지방의원을 모른다’는 말은 중앙정치에 예속된 지방선거를 그대로 보여준다.

최근 대통령 소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는 ‘지방자치발전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지방사무와 국가사무의 구분체계 정비, 중앙권한 및 사무의 지방이양, 지방재정 확충 및 건전성 강화 등 지방자치의 중요한 과제들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

육동일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교수(지방자치발전위원회 위원)는 “최종계획을 내놓기까지 중앙부처와 협의와 조정을 거치면서 위원회 자체 안들은 상당부분 삭제되거나 축소됐다”며 “지방으로 권한과 재정을 이전하는 데 중앙정부가 소극적이고 부정적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육 교수는 “중앙정치만으로는 복잡한 사회를 꾸려나가기 어렵다. 지방자치와 분권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며 “지방정부에 자율성은 늘리되 책임감도 높이는 합리적인 장치 마련을 통해 지방자치 능력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울산=이보람 기자 bor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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