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오늘 다시 불러봅니다 “엄마”

입력 : 2014-12-25 20:27:40 수정 : 2014-12-25 20:27:40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고은 등 시인 49인의 ‘사모곡’
테마 시집 ‘엄마 흐느끼던 밤을…’
엄마보다 자식이 더 길게 사는 건 미안한 일인가. 그 자식들은 살다가 어느 새 생전의 엄마 나이를 넘어서게 마련이다. 가슴 아프지만 자식이 엄마보다 먼저 가는 경우보다는 낫다. 참척의 아픔을 어디에 비길까. 탯줄로 이어진 운명적인 존재 엄마. 아픈 시간을 지나온 올해 세밑, 그 엄마를 붙들고 한국의 내로라할 시인 49명이 사모의 마음을 시로 썼다. ‘테마 시집 - 엄마 흐느끼던 밤을 기억하네’(나무옆의자)가 그것이다.

“엄마/ 엄마/ 엄마 하고 부르던/ 다섯 살의 나는 다 지워져서/ 어머니/ 어머니/ 하고 여든한 살의 묵은 목젖으로 가만히 불러보았습니다/ 저만치서 할미산 할미꽃 서넛이/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잠들어 있습니다”

여든한 살의 ‘묵은 목젖’으로 엄마를 부르는 고은(삽화). 그는 이 시 ‘성묘’에서 “내가 부르던 젖먹이 적, 젖 떼던 적의 어디에 엄마, 엄마는 묻혔을까” 자문한다.

“엄마 돌아가신 나이 47./ 엄마 떠올려 시 쓰고 있는 내 나이 지금 57./ 엄마보다 열 살을 더 사는 중입니다./ 내가 무럭무럭 늙어갈수록 엄마는 점점 더 젊어지겠지요./ (…)/ 어느날 굽어가는 키가 땅에 닿을 때/ 늙은 자식이 젊은 엄마를 안고 울 날이 올 거예요./ 그날이 올 때까지는 매연의 도시에서 뻘뻘 그리움을 흘리며/ 하얀 노래 섧게 듣고 곡선의 필체 새겨 읽어야 합니다.”

엄마보다 열 살이나 더 살아가는 중인 시인 이재무는 ‘엄마에게 쓰는 편지’에서 “늙은 자식이 젊은 엄마를 안고 울 날”을 떠올린다.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그 엄마는 자식보다 젊은 여인인 것이다. 그는 ‘엄마는 신’이라고 시작 메모에 썼다.

오세영 시인은 ‘별’에서 엄마는 ‘참회’와 ‘슬픔’의 다른 이름이라고 썼다. 늘 엄마를 떠올리면 회한이 앞서고 그리움이 슬픔으로 다가오는 건 엄마를 여읜 모든 자식들의 숙명이다. 유복자로 태어나 엄마에 대한 정이 더 각별했던 그는 “아가, 그만하면 잘했다. 잘했어./ 울지 마라/ 어머니는 허공의 별이 되어/ 그동안 날 지켜보고 계셨던 거였습니다”라고 스스로 다독인다. 새어머니를 모신 시인의 엄마 이야기도 있다. 김이듬 시인은 ‘파사칼리아’ 시작 메모에 “나를 만든 건 3할은 어머니, 3할은 새어머니, 3할은 아버지”라면서 이 모든 존재들을 “흐느끼며 사랑한다”고 적었다.

“변주되는 악장처럼 나에게는 두 개의 세계가 끝나간다/ 판이한 사람들은 아니었던 것 같다/ 엄마는 성경을 새어머니는 불경을 줄줄 읽었으므로/ 진리가 나를 사랑하여/ 원수가 스승이 되어갈 때/ 내가 피해 가야 할 길을 몸소 보여준 두 여인의 일생을/ (…)/ 엄마가 많거나 없는 소녀여/ 이제 네가 춤출 차례다”(‘파사칼리아’)

늙은 엄마들은 치매의 길을 피해 가기도 쉽지 않다. 그네들은 “딸네 집 좁은 거실에 들어온 햇빛에/ 오줌이 번져” 갈 때 속수무책으로 무안해진다. “무안한 얼굴로/ 무안한 얼굴을 쓸어주려는데// 손이 나아가질 않는다”고 장석남은 ‘말년이란 무슨 말인가 - 어머니’에 썼다. 그는 엄마를 “내 입술이 처음 닿았을 입술. 내 입술에서 처음 나왔을 이름. 내가 처음 본 사람. 그리고 맨 나중 나의 입술이 닿고 싶은 사람”이라고 메모했다. 유복자, 새어머니, 치매 같은 엄마의 사연들도 있지만 궁극에 자리 잡은 엄마의 이미지는 기실 종소리처럼 따스하고 간절할 터이다. 정호승 시인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을 향해 치는 ‘종소리’는 이렇게 울린다.

“종소리에도 손이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처럼 긴 손가락이 있다// 때로는 거칠고 따스한 어머니의 손이 있다// 어디선가 먼 데서 종소리가 울리면// 나는 가끔 종소리의 손을 잡고 울 때가 있다.// 종소리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별을 바라볼 때가 있다// 그 별이 사라진 곳으로// 어머니를 따라 멀리 사라질 때가 있다”

이번 테마시집에는 이들 외에도 강은교 고영 권대웅 김완하 김응교 김종해 노혜경 도종환 문인수 문정희 박주택 배한봉 송수권 신현림 유안진 윤관영 이건청 이승하 이진명 이흔복 전윤호 정일근 정진규 정한용 정해종 조현석 함민복 김명리 최돈선 김종철 김태형 정병근 손택수 이창수 고영민 조동범 이근화 이진우 김주대 박지웅 신혜정 류근 김승희 시인이 참여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