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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가사키의밖에서일본을 본다] 맥아더와 일본국 헌법9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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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2-22 21:26:05 수정 : 2014-12-22 21:2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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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 발표가 연일 이어지던 지난 10월8일 일본인을 깜짝 놀라게 만든 소식이 날아왔다. 바로 오슬로국제평화연구소(PRIO)가 노벨 평화상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일본국 헌법9조’를, 그 수상자로는 ‘헌법9조를 지키는 일본 국민’을 꼽은 것이다. 이 예상외의 보도에 많은 일본인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일본에서는 이 헌법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자민당뿐만 아니라 야당에서조차 헌법 개정에 대해 주장이 나올 정도로 인기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일본은 헌법9조는 일본의 자발적인 정책이 아니라 당시 연합군 사령관이었던 맥아더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결정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에 일본은 독립국으로서 자신들의 손으로 헌법을 제정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언뜻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맥아더도 그의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실정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내가 개인적인 명령으로 일본의 신헌법에 있는 ‘전쟁 포기’ 조항을 강요했다는 비난을 종종 한다. 하지만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실제 진실은 맥아더가 말했듯이, 당시의 시데하라 기주로(幣原喜重郞) 총리가 맥아더에게 제안한 것이다. 시데하라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 평화, 연맹협조, 군축, 중국에 대한 내정 불간섭 정책을 지도한 외무대신이기도 했다. 그러한 이유로 군부로부터 ‘연약외교’ ‘매국외교’라는 온갖 비난과 욕설을 받으며 정치 무대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하지만 포츠담선언 수락으로 일본의 패전이 결정되고 연합군이 점령하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 가장 적임자로 떠올라 총리가 된 인물이다. 전쟁의 비참함을 깨달으며 전쟁에 대한 뼈아픈 반성과 참회의 마음을 가지게 된 시데하라 총리와 군인으로서 여러 전쟁을 거치면서 전쟁이 없는 세상을 그 누구보다도 염원하게 된 맥아더의 평화 이상이 일치한 결과물이 이 헌법이다.

야가사키 선문대 교수·국제정치학
특히 헌법 제9조는 1928년 파리 부전조약(不戰條約)의 조문과 그 통속적인 해석에 의해 일본만을 대상으로 수정된 것은 아니다. 우선 자국의 모든 전투력을 포기함으로써 전쟁의 합법성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부인한 것이다. 이것은 극동위원회의 일본 처리 방침이나 포츠담선언을 뛰어넘는, 대서양헌장조차도 초월하는 더욱더 깊은 곳에 그 사상적 원류가 있다. 17세기 생피에르, 칸트의 계보를 잇는 것으로 단순히 일본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이상은 동서냉전이라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국제정치에서 힘의 역할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벅차오르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의기투합해서 이 헌법에 인류 평화의 염원을 담았다. 시데하라 총리는 맥아더에게 “세계는 우리들을 비현실적인 몽상가로 비웃을지 모르지만 100년 후 우리들은 예언자로 불릴 것입니다”고 했다 한다. 만일 평화를 사랑하는 전 세계인들이 시데하라와 맥아더의 뜻을 계승해 세계평화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면 이 사람들이야말로 노벨 평화상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들일 것이다.

야가사키 선문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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