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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 장애아동들에 사랑의 바이러스 퍼뜨리는 '음악 산타'

입력 : 2014-12-22 20:40:24 수정 : 2014-12-22 20:5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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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재활원서 11년째 연말 콘서트 여는 서희태 지휘자 10년 전 서울 강동구 주몽재활원을 찾은 서희태(49) 지휘자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이들과 만났다. 중증 장애를 가진 채 부모에게 버림 받은 아이들이었다. 반 이상이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했다. 서 지휘자는 아이들에게 “아저씨가 소원 하나 들어줄게. 가장 하고 싶은 게 뭐니” 하고 물었다. 아이들 소원은 소박했다. “밖에 나가서 햄버거를 마음껏 먹어보고 싶어요.”

서희태 지휘자는 매년 연말이면 부모가 없는 중증장애 아동들을 찾아 음악 선물을 풀어놓는다.
서 지휘자는 재활원생 20여명에게 바깥 나들이를 선물하고 자선음악회에도 초청했다. 외출은 간단하지 않았다. 몸을 못 가누니 아이 한 명당 자원봉사자 한 명이 있어야 했다. 재활원에는 공연장에 오기 힘든 아이들이 40명이나 더 있었다. 서 지휘자는 이때부터 매년 겨울이면 음악 선물과 함께 주몽재활원을 찾았다. 올해로 11회째인 ‘사랑의 바이러스 콘서트’는 이렇게 시작됐다. 서 지휘자는 24일 오전 10시 주몽재활원에서 올해도 어김없이 음악회를 연다. 주몽재활원생 60여명, 이웃 주몽학교 학생 200여명, 자원봉사자 등 300여명이 관객의 전부다. 재활원을 퇴소한 아이들도 잊지 않고 공연을 찾는다. 이 공연은 여느 음악회 풍경과 많이 다르다. 공연에 앞서 20일 만난 서 지휘자는 “공연 중 난리도 아니다”며 미소 지었다.

“아이들이 자기 의지와 관계 없이 소리를 내요. 노래하는데 중간에 박수도 쳐요. 스스로 몸을 통제하지 못하는 거죠. 어떤 때는 연주 중에 한 아이가 소리 지르면 다들 따라서 ‘와’ 하고 소리를 질러요.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이럴 때 ‘내가 클래식 음악가이니 이 아이들도 조용히 감상해야 해’라고 내 생각을 고집하면 안 돼요.”

아이들이 음악을 얼마나 이해할까 싶지만, 주몽재활원 측에서는 음악회가 아이들의 정서에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서 지휘자는 “2007년 청각장애아동 시설에서 우리 음악회에 오고 싶다고 요청해왔을 때 의아해했다”며 “듣지 못하는데 어떻게 공연을 보느냐 했더니 ‘듣지는 못하지만 느낄 겁니다’ 하더라”고 말했다. 당시 공연에서 서 지휘자는 진땀을 흘렸다. 청각장애 아동들이 연주를 보다가 좋은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다. 다른 관객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그러나 공연이 끝난 뒤 만난 한 관객은 “내 인생에 봤던 가장 아름다운 콘서트”라고 말했다.

서희태 지휘자와 소프라노 고진영 부부.
그가 음악 나눔을 시작한 계기는 아내인 소프라노 고진영의 제안 때문이었다. 강남베드로병원 윤강준 원장과 친분이 있던 이들은 윤 원장이 돈 없는 환자들을 기꺼이 치료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의 아내는 ‘우리도 이제 경제적으로 안정됐으니 재능의 십일조를 하자’고 말했다.

“2004년쯤에야 생활이 안정됐어요. 유학 시절에는 빈곤에 허덕였어요. 1997년 귀국했는데 일주일쯤 후에 구제금융 사태가 터진 거예요. 일거리가 없었죠. 7년 정도 무명으로 지냈어요. 15평 연립주택에서 아이 둘을 길렀으니 나눔을 생각할 여력이 없었죠.”

나눔의 정신은 윤 원장에서 이들에게로,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로 이어지고 있다. 재활원 공연에는 매년 많은 이들이 봉사를 자처한다. 올해는 세계 악기 연주자 조현철씨가 페이스북을 통해 참여 의사를 밝혔다. 아직 만난 적도 없는 사이다. 피아니스트 장유리씨도 흔쾌히 나섰다. 재작년에는 배우 오광록씨가 아이들에게 시를 읽어줬다. 다른 이들도 도움의 손길을 보탠다. 올해는 뷔페 식당 드마리스, GS 자산운용, 모자 디자이너 천순임, EXR코리아, 동일곡산, 주식회사 얼터가 음식이나 후원금, 간식을 보내왔다. 서 지휘자가 다리를 놓아 참여하게 된 이들이다.

“기부 공연을 하고 나면 우리도 아이들을 통해 감동을 받아요. 내가 무언가 나눌 수 있는 상황이라는 데 감사함이 생기죠. 흔히 하는 말로 마음이 풍요로워져요.”

나눔 활동과 별도로 서 지휘자는 최근 ‘놀라온 오케스트라’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이 악단은 오케스트라 소리의 매력을 쉽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하자는 뜻으로 지난해 3월 만들어졌다. 태어나서 성장하고 이별하는 ‘삶’을 주제로 공연하거나 올해 힘들었던 일을 희망적으로 풀어보자는 생각에서 희로애락 대신 ‘희놀애락’이란 이름으로 공연하는 등 클래식이 낯선 이들이 음악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다가서고 있다. 내년 2월에는 자녀와 부모가 함께 즐기는 공연을 계획 중이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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