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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문학노트] 한국 소설의 헛발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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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2-19 21:15:09 수정 : 2014-12-19 22:4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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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베스트셀러, 한국 소설 부진
환경 탓만 말고 우리네 삶의 현실 제대로 살폈는지 반성해봐야
올해는 ‘소설의 해’였다. 2014년 교보문고 연간 베스트셀러 분석 자료에 따르면 그렇다. 상위 종합 10위 중 6종이 소설이었다. 1981년 광화문점을 개점하고 교보문고가 베스트셀러 집계를 시작한 이래 30여 년 동안 소설 분야가 10위권 내 절반을 넘은 해는 올해를 포함해 딱 세 번뿐이었다. 그것도 1981년은 문학이 전성기였던 시대였고 2002년은 TV프로그램 ‘느낌표’ 덕분이었으니 올해 소설의 선전은 눈여겨볼 만하다. 영상시대에 문학이 설 땅이 줄어들었다고 한숨을 쉬지만 독자들은 여전히 문학, 그중에서도 소설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다. 문제는 한국 소설이다. 국내 소설은 10위에 턱걸이한 조정래의 ‘정글만리’가 유일하고 나머지는 모두 외국 작품이었다.

베스트셀러가 작품의 질을 재는 척도는 아니다. 올해 각광받은 외국 소설도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처럼 영화로 개봉됐거나 ‘미 비포 유’ 같이 미디어에 노출된 ‘미디어셀러’들이 다수이니 한국 소설의 부진을 작단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도 없다. 그래도 한국 작단이 그들만의 고고한 성채에 갇혀 달라진 환경 탓만 하는 건 아닌지 돌아볼 빌미로는 충분하다. 인접 영상 장르의 특별한 흥행 두 건을 들여다보면 더욱 그렇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아이로니컬한 소설의 해’ 끝물에 영화와 드라마 한 편이 전 국민의 관심사로 부각돼 기염을 토하고 있다. 극장에서는 98세 조병만 할아버지와 89세 강계열 할머니의 오랜 사랑을 담은 다큐멘터리 독립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연일 기록을 갈아치우며 화제를 뿌리고 있다. 수십억원 넘는 제작비를 투자하고도 관객의 호응을 얻지 못해 나가떨어지는 영화가 즐비한 마당에 노인들을, 그것도 1억5000만원 남짓한 제작비로 그려내 70억원 넘는 수익을 거두었다고 하니, 게다가 현재진행형 흥행이니 말 그대로 ‘대박’이다. 처음부터 돈을 목적으로 시작했다면 어려운 결실이었을 것이다. 진정성의 승리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할아버지는 몰라… 내가 다 챙겨줘야 돼요. 할아버지 먼저 가면… 내가 금방 못 가거든 할아버지가 델러 와요. 델로 오면 내가 할아버지 손목 잡고 새파란 치마 노란 저고리 입고….”

임종을 앞둔 할아버지의 옷을 아궁이에 태우면서 할머니가 독백처럼 울먹이는 대사에 객석 곳곳에서 같이 흐느끼는 이들이 많았다. 생전에 입었던 옷을 태워줘야 죽은 이가 저승에서 입고 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옷을 가벼운 것부터 미리 아궁이에 태우면서 우는 장면이다. 흥행 돌풍을 이어가는 관객 중 20대의 비율도 크다고 한다. 이 젊은 관객들에게 노인들의 사랑이 아름다운 동화처럼 다가갔다는 분석이다. 머리만 굴린다고 성취할 수 없는 결실이다.

오늘 종영하는 드라마 ‘미생’도 비슷한 경우다. 잘나가는 톱스타를 기용한 것도 아니고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조연들이 분투하는데도 케이블TV 시청률이 8%대까지 육박했다. 직장에서 신드롬을 일으키는 건 물론 대통령까지 공석에서 언급할 정도다. 여타 드라마들이 재벌가의 자녀와 신비감 돋는 캐릭터 설정에 몰입하는 동안 ‘미생’은 진부해서 들여다보지 않는 우리 주변의 삶을 핍진하게 드러낸 것이다. 원작 웹툰의 힘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네 삶의 현실을 제대로 드러내면서 감동이라는 코드를 공유한 것이 성공 요인이다.

‘님아…’나 ‘미생’의 소재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건 아니다. 진부할 정도로 흔해서 오히려 무시당하는 우리네 삶의 이야기다. ‘소년이 온다’(한강)나 ‘투명인간’(성석제) 같은 결실도 거두긴 했지만 대체로 한국 소설이 엉뚱한 곳에서 헛발질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할 대목이다. 어느 평론가의 지적이 통절하다. 새로운 형식과 내용도 좋지만 기본적으로 문학의 실험은 언어가 아니라 ‘인생’에 토대를 두어야 한다는 목소리다. 실험이라는 명분으로 그들만의 고고한 자맥질만 계속하는 한 독자들과 더불어 새로운 문학의 시대를 여는 건 난망하다는 주장이다. 동시대의 삶과 인생을 외면하는 문학이란, 구름 위에서 그들끼리 상찬하는 소설이란, 세간에서 비아냥거릴 때 쓰는 모욕적인 말 그대로 ‘소설’일 뿐인 것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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