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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도 한 연약한 여인이었다. 그제 검찰에 출두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90도로 허리를 굽혔다. 고개 숙인 그녀 앞에 쉴 새 없이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코끝에는 눈물 한 방울이 맺혔다. “죄송합니다!” 그녀는 이 말만 네 번을 반복했다. ‘땅콩 회항’ 사건이 터진 지 12일 만이었다. 왜 사과 한 마디가 이리도 늦었을까. 착잡했다.

땅콩이란 수식어가 붙었지만 사실 땅콩에겐 죄가 없다. 진짜 유죄는 하늘을 찌른 오너 일가의 교만이다. 로열패밀리가 비행기를 타는 날이면 회사에는 며칠 전부터 비상이 걸린다. 승무원들은 전날 모여 브리핑하고 당일엔 모의연습까지 한다. 직원들은 “정말 왕을 모시는 거 같다”고 증언한다. 패밀리는 하늘이었고 직원들은 땅이었다. 패밀리의 사전에는 겸손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겸손을 뜻하는 영어 단어 ‘humility’는 라틴어 ‘humurus’에서 왔다고 한다. 흙, 땅의 의미를 지닌 말이다. 가장 낮은 땅바닥의 위치에서 남을 섬기고 받들어야 겸손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파생된 말이 인간이란 뜻의 ‘human being’이다. 흙으로 빚어 사람을 만들었다는 성서 구절과 맥이 닿는다. 이렇듯 인간에게는 ‘흙=겸손’이라는 가치가 내재돼 있다. 그것이 사람이라는 존재다.

하늘의 법을 다루는 교황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바로 겸손이다. 30년 전 이 땅을 처음 찾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땅바닥에 입을 맞췄다. 그런 겸손을 온몸으로 실천한 인물이 지금의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그는 한없이 몸을 낮추는 ‘섬김의 리더십’으로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다. 바티칸 미사에 청소부들을 초대했고 이슬람교 여성과 장애인들을 불러 발을 씻겨주었다. 구내식당에서 줄을 서고,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 할까봐 벽을 보고 밥을 먹었다. 자기 방 밖에서 밤새 경호를 선 근위대원에게 “앉아서 쉬라”고 하고는 손수 카푸치노를 사러 가기도 했다.

겸손은 스스로를 낮춤으로써 더 높은 위치로 자신을 끌어올리는 정신적 자질이다. 널뛰기 원리와 유사하다. 나의 위치를 낮출수록 상대의 위치가 높아지고 그렇게 치솟은 상대가 다시 더 높은 위치로 나를 올려준다. 리더라면 반드시 익혀야 할 덕목이다. 대한항공 패밀리가 배워야 할 것은 하늘을 나는 법이 아니라 ‘땅 위를 걷는’ 인간의 도리가 아닐까.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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