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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려한 금수강산 비단폭 펼쳐 놓은 듯

입력 : 2014-12-16 20:34:16 수정 : 2014-12-16 20: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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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디자인플라자 ‘간송문화전’ 요즘도 많은 작가들이 외국 유명 작가들의 도록을 참고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유화의 경우엔 오랜 전통을 지닌 서구 작가들의 화법이 모델이 되고 있다. 후발 주자인 우리로선 어쩔 수 없는 처지다. 조선시대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문화 선진국인 중국 작가들의 화첩은 우리 작가들에겐 따라 해야 할 교과서적인 존재였다. 자연스럽게 우리 산수를 그렸다 해도 중국의 절경을 그대로 옮겨 온 듯한 그림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짝퉁의 시대는 진경시대를 맞이하면서 변화를 겪게 된다.

부채위에 그려진 정선의 ‘금강내산’.
진경산수화는 우리 국토 안에 있는 ‘진짜 경치(眞景)’를 소재로 이를 사생해 낸 그림이다. 퇴계와 율곡에 의해 마련된 조선성리학이라는 고유 이념이 뒷받침됐다. 문화적 자신감은 우리 눈으로 우리 산수를 나름의 화법으로 제대로 보고 그리게 만들었다. 율곡학파가 주도하고 퇴계학파가 동조하여 성공시키는 인조반정(1623) 이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진경산수화의 서막이 열렸다. 29세에 반정에 참여했던 창강(滄江) 조속(趙涑 1595∼1668)에 의해서였다.

창강은 반정 이후에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명산대천을 유람하며 사생하는 작업에 몰두하였다. 금강산도 그리고 오대산도 그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의 진경산수화는 물론 그 뒤를 이어 금강산을 많이 그렸다는 죽천 김진규의 진경산수화도 기록만 보일 뿐 실물이 전하지 않는다.

이들의 전통을 계승해 진경산수화법을 창안하고 완성한 이가 겸재 정선(1676-1759)이다. 겸재는 주역에 밝은 사대부 화가로 진경산수화법 창안에 주역의 음양조화와 음양대비 원리를 이끌어 화면을 구성했다. 중국 남방화법의 기본인 묵법(墨法)으로 음(陰)인 흙산을 표현하고 북방화법의 기본인 필법(筆法)으로 양(陽)인 바위산을 표현하는 참신한 방법이었다. 돌산과 흙산으로 이루어진 우리 산수를 제대로 그리기 위해 다양한 필법을 동원해 종합했다는 얘기다. 

금강대 정선의 말년 작품. 많은 것을 덜어 내 추상화를 연상시킨다. 추상은 구상의 완성이라는 말을 실감케 해주는 작품이다.
내년 5월 10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디자인박물관에서 열리는 ‘간송문화전’은 이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자리다. 겸재는 59세 경에 그림 ‘성류굴’에서 타계 직전 84세에 그렸다는 ‘금강대’까지 출품됐다. 관동팔경과 단양팔경, 서울 주변의 명승, 박연폭포 등이 모두 그 안에 포함돼 있다. 연대별로 겸재의 진경산수화법의 변화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말기의 작품은 많은 것을 덜어내 추상화를 연상시킬 정도다.

다음 세대인 현재 심사정, 능호관 이인상, 진재 김윤겸, 단릉 이윤영 등 사대부 화가들도 진경산수화를 각자의 기법으로 그렸다. 진경시대 말기에 이르면 단원 김홍도, 고송 유수관도인 이인문, 긍재 김득신, 초원 김석신 등 화원화가들이 배출되어 겸재의 진경정신을 계승하면서 화려하게 대미를 장식한다.

총석정 정선과 심사정의 화법을 계승하여 조화시킨 인물로 평가받는 이인문의 ‘총석정’. 바다의 수평선은 서양화의 영향을 엿 볼 수 있게 해준다
특히 김홍도는 정조의 왕명을 받들고 강원도 영동 9군의 명승을 사생해 돌아오는데, 세련된 필법으로 섬세하고 충실하게 묘사하여 겸재와는 또 다른 흥취를 자아낸다. 기교적 완성도를 높였다는 얘기다. 겸재가 기세가 있다면 단원은 시정 넘치는 정취가 압권이다.미술을 배우는 학생들이 단원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유 이념을 갖는다는 것이 문화적 자존심을 지키는 데 어떤 의미로 작용하는지 짐작케 하는 전시회다. 민족미술연구소의 백인산 실장은 “진경산수화가 활발하던 시기에는 외래문물에 귀를 열고 있었으면서도 우리의 문화적 독자성이 있었다”며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많은 요즘, 중심을 갖고 우리 것으로 소화해낸 진경산수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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