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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재의천기누설] 영화 ‘인터스텔라’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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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2-15 21:22:37 수정 : 2014-12-15 21:2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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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좋아하는 우리 국민
최선을 다하는 과학기술자들
영화 ‘인터스텔라’가 천만 관객에 육박하고 있다. 이런 영화들은 알게 모르게 나라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영화 ‘명량’이 우리에게 애국심을 되찾아준 것은 좋은 예가 되겠다.

지난 13일 과학동아에서 주최한 ‘인터스텔라’ 좌담회에 참가했다. 행사장 좌석이 120석밖에 안 되는데 600명이 신청해 주최 측이 곤욕을 치렀다. 이처럼 영화 ‘인터스텔라’는 특히 우리나라에서 흥행에 성공했는데 이것을 가지고 말들이 많다.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위원
어떤 언론은 이 영화가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 국민의 지적 허영심을 자극했다고 평했다. 내 생각은 다르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동안 우리 정부가 꾸준히 펼쳐온 과학문화 정책이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본다. 우리 사회는 참 칭찬에 인색하다. 특히 정부나 공기관이 일을 잘했다고 말하면 의혹에 찬 눈으로 바라보기 일쑤다.

하지만 나는 천문학자 입장에서 잘한 것은 잘했다고 말하고 싶다. 과학기술부-교육과학기술부-미래창조과학부로 조직이 바뀌는 와중에도 정부는 전국에 과학관을 증설하는 정책을 초지일관 펴왔다. 그 결과 광역시들은 거의 다 규모가 제법 큰 과학관들을 갖추게 됐고 전국에 공립 시민천문대들이 건립됐다.

국정감사에서 어떤 국회의원이 시민천문대를 너무 많이 만드는 것 아니냐고 질의할 정도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시민천문대가 많은 것은 결코 아니다. 이웃나라 일본에는 청소년과 시민들이 별을 볼 수 있는 수백 개의 시민천문대가 있다.

미국 LA를 갈 일이 있으면 꼭 그리피스 천문대를 방문하기 바란다. 선진국 시민천문대가 어떤 곳인지 한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영화 ‘터미네이터5’ 예고편을 보니 많은 부분을 여기서 촬영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 천문대는 옛날 영화 ‘이유 없는 반항’에도 등장했다. 우리 수도 서울에 이런 천문대가 없다는 것은 우주시대에 참 부끄러운 일이다.

최근 들어 초등학교 부모들치고 아이들과 함께 천문대에 가서 별을 보지 않은 사람들이 거의 없다. 부모와 아이들이 야외에서 같이 별을 보는 TV 광고도 몇 개나 나왔다. 우리 국민들은 이제 별과 우주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국립과학관의 천체투영실들은 주말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다.

특히 최근 아웃도어 열풍과도 잘 맞아떨어졌다. 야외에서 낮에는 할 일이 많아도 밤에는 별 볼 일밖에 없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부모들이 별자리를 모르기 때문에 그저 ‘별이 참 많지?’ 같은 멘트나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스마트폰에 천문 앱만 깔면 상세히 가르쳐주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됐다.

내가 1991년 34세의 나이로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를 창립해 초대회장을 맡았을 때 회원이 100명도 안 됐다. 현재 한국의 아마추어 천문학 인구는 어림잡아도 수십만 명에 이른다.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실시하는 2박3일 초중고 교사천문연수를 다녀간 교사만 6000명이 넘는다.

묵묵히 1995년부터 20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연수를 실시한 결과다. 연수를 마친 교사들은 학교로 돌아가 맹활약(?)을 하고 있다. 그 결과 지금은 천문학 동아리가 없는 학교가 드물게 됐다. 한국과학문화재단(현 한국과학창의재단)과 한국우주소년단도 큰 기여를 했다.

과학문화에 대한 저변확대가 정부와 공기관들에 의해 정책적으로 치밀하게 이뤄졌기 때문에 영화 ‘인터스텔라’의 관객이 천만에 육박한 것이다. 이렇게 상승한 집단지성은 앞으로 ‘스마트 코리아’ 건설에 결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이제 우리도 국민의 지지를 업고 우주개발에 뛰어들 수 있게 됐다. 이소연 우주인 때문에 시장 아주머니, 아파트 경비 아저씨, 택배 청년… 온 국민이 우주를 얘기하게 됐다. 내가 아는 한 수백억 원 예산의 과학문화사업을 펼쳐도 이처럼 단숨에 대다수 국민들을 우주에 빠져들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소연 우주인에 대한 세간의 혹평에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이런 효과가 배제된 것 같다.

세월호 때문에 기른 해양수산부 이주영 장관의 수염이 올해 우리 모두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물론 상황은 크게 다르지만 내가 한국천문연구원장이었던 시절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당시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백홍열 원장이 나로호 때문에 수염을 깎지 못했던 것이다. 백 원장 후임 이주진 원장도 나로호 실패의 모든 책임을 지고 깨끗이 물러났다. 나는 두 원장의 고뇌하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 대한민국의 항공우주역사는 이분들과 고산 우주인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항공우주정책은 비틀거리는 것처럼 보여도 목적지를 향해 묵묵히 전진하고 있다. 국방정책 차원에서 공군도 한국천문연구원과 함께 첩보위성 등을 색출하는 우주감시 작전에 나선 지 오래다. 누가 뭐라고 하든 말든 우주선을 올리는 일은 과학기술자들의 몫이고 우리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지난 12일에는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영화 ‘인터스텔라’에 대한 강의를 하고 왔다. 진지하게 경청하는 젊은 공무원들의 눈동자로부터 밝은 과학기술의 미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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