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류순열의경제수첩] 아베노믹스 실패, 강 건너 불

관련이슈 류순열의 경제수첩

입력 : 2014-11-28 21:09:46 수정 : 2014-11-28 22:56:51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돈풀어 경기부양, 아베노믹스 한계에…
정책 전환할지 주목, 한국경제 양상 비슷… 日 전철 밟을까 우려
“살기를 원하느냐?”, “무사를 희롱하지 말라.” 김훈 장편소설 ‘칼의 노래’에 이런 대화가 나온다. 이순신 장군이 스물세 살의 왜군 포로 아베 준이치를 신문하는 대목이다. 다시 묻는다. “죽기를 원하느냐?” “내 손으로 죽기를 원한다. 칼을 빌려 달라.” 아베의 소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순신 장군은 직접 아베를 베었다. 셋째 아들 면의 죽음에 대한 복수였다. 왜군은 명량해전 패배 후 이순신 장군의 고향 아산을 급습했다. 아베는 ‘아산작전’에 투입된 병사였고, 스물한 살의 면은 이들과 싸우다 죽었다.

일본 영화 ‘나라야마부시코’엔 충격적인 장면이 나온다. 먹을 것이 부족한 산간 마을의 겨울, 주민들이 한밤중 삽과 곡괭이를 들고 뛰쳐나와 구덩이를 판다. 이어 일가족을 끌고 나와 모조리 구덩이에 집어던진다. 울음이 터진 갓난아이까지 예외가 없다. 생매장된 가족의 가장은 절도 현행범이다. 굶주리는 처자식을 먹이기 위해 야음을 틈타 집집마다 걸려 있는 작물을 훔치다 붙잡혔다. 생매장되기 직전 구덩이를 기어올라온 가장은 삽질하는 젊은이에게 읍소한다. “자네는 내 사위 아닌가.” “그게 무슨 상관인가.” 장인은 사위가 휘두른 삽에 얼굴을 맞고 구덩이로 처박힌다.

류순열 선임기자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 아베, 장인에게 삽질하는 사위에게서 공통의 정서가 느껴진다. 결과에 대한 승복, 원칙을 지키는 신념 같은 것이다. 마음속에 바위같이 단단한 그 무엇이 없다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그토록 초연할 수 없고, 냉혹하리만큼 공과 사를 구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단단한 원칙이 개인의 명예를 지키고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는 비결임을 가상의 두 인물은 보여준다.

현실세계의 일본 아베 총리도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형국이다. ‘잃어버린 20년’을 되찾는 계기가 되리라는 기대를 모았던 아베노믹스는 실패가 기정사실화했다. 지난 2년간 돈을 풀고 풀어도 일본 경제의 무기력증은 치유되지 않았다. 엔저(엔화 약세)는 수출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고 수입물가만 높여 내수를 더욱 위축시켰다. 아베가 강조하던 임금 인상은 부진하고 이자소득이 줄어들면서 가계는 더욱 지갑을 열지 못했다. 의도했던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걱정했던 부작용만 커지는 흐름이다.

돈을 풀어 경기를 살린다는 게 골자인 아베노믹스는 이제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 4분기에도 경제성적이 오르지 않는다면 신뢰의 위기를 넘어 실패는 확정될 전망이다. 의회 해산, 조기 총선의 정치적 승부수를 띄운 아베가 재신임을 받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소비세 인상을 연기해 시간을 번다고 아베노믹스의 약점이 저절로 고쳐질 리 만무하다.

아베의 화살은 처음부터 빗나갈 수밖에 없었는지 모른다. 아베노믹스 출범 당시 몇몇 경제학자는 “말도 안 되는 정책”이라며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다”고 혹평했다. 내수와 수출의 경제성장 기여도가 7대 3인 점을 감안할 때 돈을 풀어 엔화 약세를 유도하는 정책은 득보다 실이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엔저가 원론적으로 수출엔 도움이 되는 반면 내수엔 부담일 수밖에 없는데 수출보다 내수 비중이 더 크니 전체적으로 부정적 효과가 클 것이라는 얘기다. 게다가 해외생산 확대 등으로 엔저의 수출 증대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결과에 대한 승복, 원칙을 지키는 신념은 아베노믹스에서도 나타날까. 깨끗이 실패를 선언하고 정책 대전환을 할 가능성 말이다. 한 경제학자는 “실패를 인정하는 순간이 오지 않겠냐”고 했다. 그러나 빨리 올 것 같지 않다. 달리 방법이 없으니 가던 길 계속 가는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보는 이들이 훨씬 많다.

남 걱정할 때가 아니다. 아베노믹스의 위기는 강 건너의 불이 아니다. 일찍이 어느 경제학자는 “아베노믹스는 성공해도 걱정, 실패하면 더 걱정”이라고 했다. 한국경제에 미칠 충격을 말하는 거였다. 안 그래도 고령화, 양극화, 가계부채 등 한국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엔 위험 신호가 적잖다. 이런 터에 한국 정부도 돈만 풀면 경기가 살 것처럼 주문을 외는 모습이다. 정녕 일본을 따라가려는가.

류순열 선임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