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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철칼럼] 오세훈은 돈키호테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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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1-27 21:04:32 수정 : 2014-11-27 21: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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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현실화한 무상복지의 역습 선별복지 기조로 가야
통찰력과 용기 필요 박원순 시장 입장 궁금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애들 밥 먹이는 일”이라며 맞설 때, 야당이 “참 나쁜 투표”라고 감정선을 건드리는 불참 운동에 나설 때 승패는 이미 갈렸다. 어른들이 소신껏 투표장에 가긴 어려운 분위기였다. 2011년 8월24일 무상급식 전면시행 여부를 묻는 서울시 주민투표는 투표함을 열지도 못하고 끝났다. 대한민국이 공짜복지 덫에 걸려 침체의 늪으로 더욱 깊숙이 빠져드는 순간이었다.

당시 여당엔 이게 얼마나 중요한 싸움인 줄 제대로 안 사람이 없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전면적 공짜급식은 망국의 포퓰리즘”이라고 외칠 때 나온 한나라당의 공식 논평을 보자.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정책투표이므로 시장 거취를 연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정치학자의 수업에서 들을 만한 지극히 한가한 소리다. 나라의 미래를 책임지는 집권여당이라면 의당 분명한 입장이 있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했다. 포퓰리즘에 치여 눈치보기에 급급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홍준표 당대표는 이런 말도 했다. “이번 사안은 대한민국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작은 주제에 불과하다.” 과연 그런가.

오 시장은 그때 경고했다. “과잉복지는 증세를 불러오고, 미래 세대에게 무거운 빚을 지울 것이다.” 시장직을 사퇴하면서 한 말이다. 말의 진실을 확인하는 데 시간은 많이 걸리지도 않는다. 딱 3년 걸렸을 뿐이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은 몇 달 전 ‘복지 디폴트’를 주장했다. 시도교육감들은 무상보육 예산이 없다고 나자빠졌다. 일부 도지사들은 무상급식 예산 지원을 거부했다. 도지사와 교육감 갈등으로 아이들 등이 터지고 있다. 야당은 증세를 언급하고 있다. 온 나라가 아우성이다. 무상복지의 역습은 엄연한 현실이다. 나라 곳간에 구멍이 숭숭 뚫린 사실을 3년 만에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정치판은 북 치고 장구 치면서 전면 무상급식, 전면 무상보육, 기초노령연금 확대 등 잔치판을 벌였다. 빚내서 벌인 잔치의 후유증이 이리 크다.

홍준표 경남지사가 공짜복지와 싸우는 투사로 나선 것은 다소 의외이긴 하다. 3년 전을 반추해볼 때 그렇다. 오세훈의 투혼에 시큰둥해하고 작은 주제라고 평가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런 그였기에 무상복지의 역습이 현실이라는 점은 더욱 뚜렷해진다. 홍준표가 “좌파의 무상파티에 더 이상 동참할 수 없다”고 선언할 때 내세운 이유는 간명했다. “국고가 거덜 나고 지방재정이 파탄 날 지경이다.” 오세훈이 3년 전 “증세와 무거운 빚”을 예고한 것과 차이가 없다.

현실은 냉엄하다. 돈은 부족하고 쓸 곳은 한두 군데가 아니다. 그런데도 굳이 세계에서 북유럽 두 나라만이 실시 중인 전면 무상급식을 우리도 따라 해야 하는가. 그 나라와 같은 수준의 복지를 누리려면 우리도 세금을 두 배는 더 내야 하지 않는가. 이런 문제점을 홍 지사도 생생히 보고 있는 것이다. 현장에서 예산을 집행해 보니 그렇다는 것이다. 

백영철 논설위원
3년 전 전쟁에서 유일하게 축배를 높이 든 사람은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보궐선거에서 당선 된 뒤 처음 결재한 것이 초등학교 5, 6년생에 대한 무상급식 실시 건이었다. 올 6·4 지방선거에서도 공약하는 등 그는 전면 무상급식 행동론자다. 박 시장은 현재 차기 정치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수위다. 무상급식의 역습은 박 시장을 비켜갈 것인가.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새누리당은 집권당으로서 더 이상 좌고우면해선 안 된다. 선별적 복지 기조의 깃발을 확고하게 들어야 할 때다. “애들 밥 먹이는 일”이라는 선동에 어른들이 쉽게 넘어가는 일이 재발돼선 나라꼴이 우습게 된다. 무상급식 문제는 늦어도 3년 후 대선 때 정치인의 운명과 함께 확실하게 결론이 나야 한다.

오세훈은 결코 돈키호테가 아니었다. 무모하긴 했지만 정치인으로 기회주의적이지도,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도, 자리를 지키기 위해 무책임하지도 않았다. 통찰력 있고 용기 있는 정치인이 많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 누가 오세훈에게 돌을 던지랴.

백영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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