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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처럼… 깨달음의 길도 멀지않아”

입력 : 2014-11-25 21:25:51 수정 : 2014-11-25 21:2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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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내리는 스님’ 해인사 원철 스님 산문집 ‘집으로…’ 펴내 “사람들은 관점을 잘 바꾸려 하지 않는데, 관점도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어요. 세상을 보는 관점이 바뀌었다는 것은 나를 새롭게 만들었다는 증좌지요. 잘하는 일보다 못하는 일을 일부러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깔끔한 글솜씨와 함께 커피를 맛있게 내리는 것으로도 유명한 원철(54) 스님이 산문집 ‘집으로 가는 길은 어디서라도 멀지 않다’(불광출판사)를 펴내고 잠시 서울을 찾았다. 서울 조계사에서 ‘수도승(首都僧)’으로 지내다 2011년 속리산 법주사를 거쳐 친정인 해인사로 내려간 지 7년 만이다. 현재 스님들의 교육기관인 해인사승가대학장을 맡고 있다.

“출가생활도 직장생활과 똑같아요. 아무것도 안 해도 피곤하고 긴장의 연속이지요. 글쓰기는 휴식이자, 숨 쉴 구멍을 만들어 주지요.”

세상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작은 선물이라고 생각해 시작한 글쓰기가 ‘왜 부처님은 주지를 하셨을까’, ‘절집을 물고 물고기 떠 있네’ ‘할로 죽이고 방으로 살리고’ 등 집필하는 책마다 공전의 히트를 쳤다. 원철 스님은 이야기가 있는 ‘스토리텔링’을 중시한다. 글이 안 써지면 발품을 팔아 현장을 다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번 책 제목도 예사롭지가 않다.

“어디로 여행을 가든 집으로 돌아갈 때는 멀다고 느껴지지 않잖아요. 깨달음의 길도 어디에서 출발해도 결코 멀지 않죠. 주어진 시간도 언제나 충분하다고 봅니다.”

그가 말하는 ‘집’이란 인간의 본향, 본래 면목이기도 하다. ‘집으로 가는 길…’은 절집의 일상생활과 수행, 공부, 여행단상 등을 담았다. 사람들은 살면서 스스로 한두 마디 교훈을 만들어내기도 쉽지 않건만, 원철 스님은 ‘부지런함이 번뇌를 쓸어버린다’ ‘죽어도 좋고, 살면 더 좋고’ ‘쉬고 또 쉬면 쇠(철)나무에도 꽃이 핀다’ ‘정직한 기록이 지혜를 남긴다’ 등 다양한 깨달음의 언어로 글을 채우고 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양변을 같이 보는 중도주의 삶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것이 시대 트렌드에도 맞다고 생각해요.”

해인사 승가대학장인 원철 스님은 “요즘 학인들은 비장함보다 자아실현을 위한 대안적 삶을 찾아 출가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며 “싱글이 문화현상이 된 시대에 대안적 삶의 한 방식으로 출가 세계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면 어떻겠느냐”고 주문했다.
그는 불교의 중도(中道) 사상과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책을 흥미롭게 풀어나간다.

원철 스님이 일본 전역에서 대학입학시험을 앞두고 연간 700만명이 방문한다는 신사를 찾았을 때다. 스님은 ‘시험신’(학문의 신)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 모신 규슈 덴만구 주변 찹쌀떡 가게에서 입시장에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찹쌀떡 유래가 한 비구니 스님이 유배당해 온 헤이안 시대의 학자 미치자네에게 위로차 자주 갖다준 선물이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아낸다. 찹쌀떡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으면 미치자네가 죽었을 때 관 위에 올려줬을까. 억울함으로 가득찬 귀양객에게 백마디 거룩한 말보다, 한 개의 달고 쫄깃쫄깃한 찹쌀떡이 훨씬 더 감동적이었을 터, 그 뒤 이 ‘소울푸드’는 미치자네를 원망을 접고 시험신으로 등극시킨 일등공신이 됐다. 중국의 운문 대선사도 성인마저 뛰어넘을 수 없는 경지를 가리켜 “찹쌀떡(호떡)”이라고 표현했다며 선어록까지 끄집어내 글을 마무리 짓는 솜씨는 모자람이 없다.

당나라 때 관리를 뽑는 과거장이 비리에 물들자 마조 스님이 붓다의 후보를 뽑는 선불장을 만들었는데, 당시 인재들이 선불장으로 몰렸다는 이야기, 국내에서는 커피 볶는 기계가 깨 볶는 기계 장인이 만들었다는 이야기 등은 재미와 감동, 삶의 지혜까지 안겨준다. 책에는 희로애락이 깃든 사연과 정보가 빼곡하다.

산에 살다보면 세포가 섬세해져 커피의 향과 맛도 더 잘 느껴지는 걸까. 스님을 찾아오는 손님 10명 가운데 9명은 커피를 먼저 찾는다. 하지만 스님은 차와 커피 둘 다 대접한다. 요즘은 커피가 대세이니 트렌드도 따르고, 우리 차문화도 지키려는 뜻이다. 이 역시 중도주의적 발상이다.

“글이 잘 써지면 그 순간 해탈을 느끼죠. 커피맛도 더 좋아요. 책도 그렇지만, 경전도 사람의 심금을 울리고, 메시지가 강한 것이 천년 넘도록 생명력이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원철 스님은 이야기를 끝내고 ‘체로검풍(體露劍風)’의 해인사로 총총 걸음을 옮겼다. 가을바람에 화려한 옷을 벗고 본래의 나무 모습을 하고 있는 그 양변의 현장으로.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tol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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