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서른 여섯 발레리나 이야기 들어볼래요?

입력 : 2014-11-24 21:35:41 수정 : 2014-11-24 21:45:27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춤이 말하다’ 무대 오르는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지영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지영(36)이 무대에 오르면 관객의 시선이 일제히 쏠린다. 그의 춤에는 3차원의 몸짓을 넘어서는 에너지가 있다. 관객은 그에게 주저없이 ‘국내 최고’라는 찬사를 보낸다. 무대 위 김지영은 경탄과 선망의 대상이다. 이런 그가 무대 뒤편의 민낯을 공개한다. 내달 19∼25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리는 공연 ‘2014 춤이 말하다’를 통해 ‘무용가와 몸’에 대해 입을 연다.

‘춤이 말하다’는 국립현대무용단이 지난해 시작한 레퍼토리다. 무용가들이 자신의 얘기를 직접 말하면서 춤을 보여준다. 김지영은 2년 연속으로 참여한다. 23일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작년에 엄청 힘들게 준비해서 ‘아이∼다신 안 해’하고 생각할 정도였다”며 “그런데 고생해서인지 관객 호응이 좋았고 자유소극장의 작은 느낌도 매력적이었다”고 밝혔다. 이번에 그가 관객에게 털어놓을 주제는 ‘정신’이다.

“올해 주제는 몸인데, 부상 얘기는 저 말고도 말할 사람이 많아요. 다리 아프고 어디 아프고 이건 진부하지 않아요? 하하. 정신도 몸의 일부잖아요. 클래식 발레의 캐릭터들에 빨리 몰입했다가 빠져나와야 하는 점, 공연이 끝나고 오는 허탈함, 상실감을 얘기할 것 같아요.”

이 공연에는 김지영 외에도 현대무용, 한국무용, 스트리트댄스 무용가들이 함께 한다. 이들은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와 상담·검사를 통해 공연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서른 후반이라 인생을 되돌아보게 돼요. 또 발레리나로서 후반기잖아요. 왔다 갔다 하는 기로에 서 있는 나이죠. 고민이 많을 수밖에요. 요즘 인생에서 ‘제2의 사춘기’를 겪고 있는 것 같아요. 연습하면서 ‘이거 너무 사적이지 않을까’ 생각하긴 해요. 하지만 화려한 면만이 아니라, 무용가의 뒷얘기를 전하는 거니까요. 수위를 조절해야겠지만 사적인 면을 노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지영은 우아한 무대 위 모습과 달리 털털하고 거침없었다. “이런 얘기 기사에 써도 되나” 갸우뚱하면서 웃음과 농담을 섞어 얘기를 이어갔다. 프로로 데뷔한 지 18년째, 이제는 눈 감고도 무대에 오르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진짜 갈수록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무대를 아니까 더 힘들어요. 한번은 ‘이러다 기절하겠다’ 싶을 만큼 떨었어요. 수명이 줄어드는 게 느껴져요. ‘실수한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2000명의 관객에게 실망감을 주는 것뿐인데 왜 이럴까’ 하는데 잘 안 돼요. 마음을 다스리는 법요? 그냥 심호흡하는 거죠. 너무 웃긴 게, 준비가 잘 된 공연은 잘 하고 싶어서 떨려요. 아무리 연습이 잘 돼 있어도 무대에서는 모르니까요. 긴장하고 수명 줄어드는 느낌은 점점 심해지는 거 같아요.”

이렇게 잔뜩 긴장하며 오른 무대가 끝나면 허탈감이 밀려온다. “다 쏟아내고 내려오면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나를 나타내고 힐링이 되고 나한테 집중할 수 있어 춤 추는 순간이 좋다”며 웃었다. 이번에 ‘정신’에 대해 얘기한다고 그의 몸에 이상이 없는 건 아니다. 그는 “365일 중에 300일이 아프다”고 털어놓았다. 

김지영은 “이번 공연에서 제가 했던 작품들을 색다르게 편집해서 무대 위에서 ‘짜잔’ 보여드릴 것”이라며 “예쁜 조명 받고 의상 입은 모습은 아니고 관객들이 연습실로 몰래 들어와서 본 듯한 느낌일 것”이라고 밝혔다.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아픔을 달고 사는 거죠. 공연할 때 100% 완벽한 컨디션으로 선 적이 없어요. 이제는 익숙해져서 안고 가요. 과도한 운동은 건강을 해칩니다. 하하.”

그가 요즘 흔히 듣는 질문 중 하나는 은퇴 시기다. 그는 “2009년 네덜란드국립발레단에서 돌아올 때 앞으로 5년쯤 출까 했는데 지금 더 넘어가고 있다”며 “몸 상태로 봐서는 아직 더 출 것 같다”고 했다. 그가 오랫동안 다닌 재활센터 담당자는 처음에 10년을 내다봤고, 지금은 이보다 더 오래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박수칠 때 떠나고 싶어요. 그걸 어떻게 결정할지가 힘들어요.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는 건 쉽지 않거든요. 개인적 소망은 애를 한번 낳고 무대에 선 다음 내려오고 싶어요. (수줍게 웃으며) 은퇴 무대에서 마지막 인사를 할 때 남편과 아이가 꽃을 줬으면 좋겠어요. 작은 소망이죠.”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