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이 말하다’는 국립현대무용단이 지난해 시작한 레퍼토리다. 무용가들이 자신의 얘기를 직접 말하면서 춤을 보여준다. 김지영은 2년 연속으로 참여한다. 23일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작년에 엄청 힘들게 준비해서 ‘아이∼다신 안 해’하고 생각할 정도였다”며 “그런데 고생해서인지 관객 호응이 좋았고 자유소극장의 작은 느낌도 매력적이었다”고 밝혔다. 이번에 그가 관객에게 털어놓을 주제는 ‘정신’이다.
“올해 주제는 몸인데, 부상 얘기는 저 말고도 말할 사람이 많아요. 다리 아프고 어디 아프고 이건 진부하지 않아요? 하하. 정신도 몸의 일부잖아요. 클래식 발레의 캐릭터들에 빨리 몰입했다가 빠져나와야 하는 점, 공연이 끝나고 오는 허탈함, 상실감을 얘기할 것 같아요.”
이 공연에는 김지영 외에도 현대무용, 한국무용, 스트리트댄스 무용가들이 함께 한다. 이들은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와 상담·검사를 통해 공연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서른 후반이라 인생을 되돌아보게 돼요. 또 발레리나로서 후반기잖아요. 왔다 갔다 하는 기로에 서 있는 나이죠. 고민이 많을 수밖에요. 요즘 인생에서 ‘제2의 사춘기’를 겪고 있는 것 같아요. 연습하면서 ‘이거 너무 사적이지 않을까’ 생각하긴 해요. 하지만 화려한 면만이 아니라, 무용가의 뒷얘기를 전하는 거니까요. 수위를 조절해야겠지만 사적인 면을 노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지영은 우아한 무대 위 모습과 달리 털털하고 거침없었다. “이런 얘기 기사에 써도 되나” 갸우뚱하면서 웃음과 농담을 섞어 얘기를 이어갔다. 프로로 데뷔한 지 18년째, 이제는 눈 감고도 무대에 오르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진짜 갈수록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무대를 아니까 더 힘들어요. 한번은 ‘이러다 기절하겠다’ 싶을 만큼 떨었어요. 수명이 줄어드는 게 느껴져요. ‘실수한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2000명의 관객에게 실망감을 주는 것뿐인데 왜 이럴까’ 하는데 잘 안 돼요. 마음을 다스리는 법요? 그냥 심호흡하는 거죠. 너무 웃긴 게, 준비가 잘 된 공연은 잘 하고 싶어서 떨려요. 아무리 연습이 잘 돼 있어도 무대에서는 모르니까요. 긴장하고 수명 줄어드는 느낌은 점점 심해지는 거 같아요.”
이렇게 잔뜩 긴장하며 오른 무대가 끝나면 허탈감이 밀려온다. “다 쏟아내고 내려오면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나를 나타내고 힐링이 되고 나한테 집중할 수 있어 춤 추는 순간이 좋다”며 웃었다. 이번에 ‘정신’에 대해 얘기한다고 그의 몸에 이상이 없는 건 아니다. 그는 “365일 중에 300일이 아프다”고 털어놓았다.
김지영은 “이번 공연에서 제가 했던 작품들을 색다르게 편집해서 무대 위에서 ‘짜잔’ 보여드릴 것”이라며 “예쁜 조명 받고 의상 입은 모습은 아니고 관객들이 연습실로 몰래 들어와서 본 듯한 느낌일 것”이라고 밝혔다.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
그가 요즘 흔히 듣는 질문 중 하나는 은퇴 시기다. 그는 “2009년 네덜란드국립발레단에서 돌아올 때 앞으로 5년쯤 출까 했는데 지금 더 넘어가고 있다”며 “몸 상태로 봐서는 아직 더 출 것 같다”고 했다. 그가 오랫동안 다닌 재활센터 담당자는 처음에 10년을 내다봤고, 지금은 이보다 더 오래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박수칠 때 떠나고 싶어요. 그걸 어떻게 결정할지가 힘들어요.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는 건 쉽지 않거든요. 개인적 소망은 애를 한번 낳고 무대에 선 다음 내려오고 싶어요. (수줍게 웃으며) 은퇴 무대에서 마지막 인사를 할 때 남편과 아이가 꽃을 줬으면 좋겠어요. 작은 소망이죠.”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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