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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 찌르는 '돌직구 대사' 기울어진 무대 세월호같아

입력 : 2014-11-24 20:46:34 수정 : 2014-11-24 21:4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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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작가 헨리크 입센 '사회의 기둥들' 국내 초연
연극팬이 아니라면 극작가로서 헨리크 입센(1828∼1906)의 진가를 알기는 쉽지 않다. 연극 ‘사회의 기둥들’(사진)은 입센이 왜 노르웨이 국민 작가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내 초연인 이 작품은 137년 전 쓰여졌지만 시대와 지역을 훌쩍 뛰어넘는다. 우리 사회와 판박이처럼 닮은 극 내용은 씁쓸한 한탄을 절로 자아낸다. 특히 세월호 참사의 아픔이 생생한 국내 관객에게는 안타까움과 공분이 크게 다가올 듯하다.

‘사회의 기둥들’은 오니가 잔뜩 쌓인 물속을 한바탕 헤집은 뒤 깨끗하게 쓸어보내는 듯한 극이다. 입체적 주인공, 복잡하고 논리적으로 얽힌 사건들, 불안감을 고조시키다 절정에 이르러 오케스트라 총주처럼 터트리는 구성이 돋보인다.

배경은 노르웨이 소도시다. 이 도시에서는 도덕과 예의범절이 최고의 미덕이다. 철도를 따라 들어올 외부세계는 더럽고 위험한 오염 물질 정도로 여긴다. 영사이자 조선소 사장인 베르니크는 흠 하나 없는 존경의 대상으로 ‘최고의 시민’으로 불린다. 우아한 도덕이 넘치던 베르니크가에 불안한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15년 전 이 도시에 상스러운 소문을 남긴 채 미국으로 도망쳤던 로나와 요한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베르니크가 거짓 위에 쌓아올린 명예를 뿌리부터 뒤흔든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선소에도 문제가 생긴다. 노조위원장은 인력 감축을 초래할 새 기계의 사용을 거부한다. 미국 고객사에서는 침몰이 명약관화한 배를 막무가내로 출항시키라고 윽박지른다. 극이 진행될수록 입센은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완벽해보이던 베르니크의 가면을 하나하나 벗긴다. 겉치레와 위선으로 포장된 도덕의 실체를 가차없이 드러낸다.

입센은 베르니크를 통해 그럴싸한 명분 뒤에 숨은 부정축재, 부동산 투기를 꼬집는다. 평범한 개인의 무사안일과 이기주의가 초래할 비극도 놓치지 않는다. 근대 작가답게 낡은 관습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변화가 몰고올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켜라고 독려한다. “자신에게 당당하게 살겠어요”, “언젠가는 진실로만 살 날이 올 겁니다”라는 대사는 입센이 바라는 인간상을 보여준다. 작가는 “진리와 자유, 그게 바로 사회의 기둥들”이라고 말한다. 대사 하나하나가 화살처럼 박힌다.

이 연극에서는 배우들이 적재적소에서 빈틈없이 주고받는 호흡이 빼어나다. 특히 베르니크 역의 박지일은 어려운 역을 제대로 포착해 표현했다. 베르니크는 미국 자본의 인명 경시에 놀랄 정도의 도덕심과 죄의식은 가졌으나 끝내 자신의 명예는 포기하지 못한 채 위선 속에 번민한다. 처음에 수평이던 무대는 모르는 새에 서서히 기울어진다. 관객이 눈치 챘을 즈음 이미 급격히 기운 무대는 대한민국호의 오늘을 떠올리게 한다. 교훈적 대사가 등장하는 극 마무리는 다소 사족으로 보인다. 30일까지 서울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3만∼5만원. (02)2005-0114

송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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