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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가 해돋이 명소? 옛날엔 '휴대폰'이었다!

입력 : 2014-11-23 14:06:31 수정 : 2014-11-23 16:3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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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동통신 봉수/최진연 글·사진/강이/3만3000원
“황혼 무렵 나그네의 시선은 남산에 멎게 된다. 어둠 속에 묻힌 산은 마법에서 풀린 듯 갑자기 꼭대기에서 별 네 개를 토해 낸다. 산봉우리에서 반짝이는 별 네 개를 볼 때면 자신도 모르게 어떤 전율을 느끼리라. 다른 세상에서 오는 빛이라고 생각될 만큼 타오르는 빛은 실은 별이 아니다. 봉화다. 모든 일이 잘돼 가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용 횃불이다. 봉화는 꼭 위험을 경고하는 것만 아니다. 평상시 조선 전역의 만사가 평화롭다는 신호로도 사용된다.”

구한말 한국 전역을 여행한 미국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1855∼1916)이 남긴 견문록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나오는 구절이다. 서울 남산 꼭대기 주위를 환하게 밝힌 봉화를 바라보며 느낀 감상을 담고 있다. 당시 남산 봉수대는 전국 방방곡곡에 뻗쳐 있는 봉화들의 최종 집결지였다. “산봉우리에서 반짝이는 별 네 개” 등의 묘사가 매우 사실적이고 섬세하다.

‘옛 이동통신 봉수’는 광복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정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우리나라 봉수의 현황과 역사를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다. 저자가 지난 30여년 동안 최전방 비무장지대(DMZ)의 도라산 봉수부터 제주도 오소포연대까지 전국의 봉수대가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발로 뛰며 찾아다닌 결과물이다.

‘우리 터 우리 혼, 오늘도 팔도가 무사하다 봉화가 전해 주네’라는 부제에서 보듯 봉수는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기까지 우리나라 안보를 책임진 군사시설이다. 책은 우리나라 봉수 218개소 가운데 멸실된 7개소를 제외한 현존하는 211개소와 봉수의 시원지로 알려진 진해 망산도비문 1개소를 소개한다. 이 중 유적 상태가 절반 정도 보존된 곳은 61개소, 담장만 남은 곳이 79개소, 복원된 곳은 71개소다.

우리나라 봉수는 시기적으로 약간씩 차이가 있으나, 조선 말에 편찬된 ‘증보문헌비고’에 따르면 남북한을 통틀어 676개소가 축조됐다고 한다. 하지만 문헌에 없는 것까지 합하면 얼마가 될지 알 수가 없다. 역사학자들은 한반도에 총 1150여 기의 봉수가 세워졌으며 이 중 650여 기가 북한, 500여 기가 남한에 각각 있었다고 추정한다. 지금까지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은 400기가 좀 넘는다.

저자에 따르면 대부분의 봉수는 산 정상에 축조돼 있기 때문에 실제로 조사하기란 여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며 자연 유실되거나 위치를 찾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저자는 “무거운 카메라 장비를 들고 접근이 어려운 산봉우리를 찾아다니는 것은 고행의 연속이었다”며 “잘 알려지지 않은 봉수대는 등산로가 없어 톱으로 잡목을 헤쳐 가며 길을 냈다”고 소개했다.

생태보호 구역이 늘면서 남해와 서해안의 봉수 주변은 뱀의 출몰이 잦아졌다. 저자는 “고흥반도가 한눈에 조망되는 봉수대는 독사가 득시글거렸고, 여수지역 도서인 안도 봉수에서는 커다란 구렁이와 마주쳐 혼비백산한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2000년대 들어 전망 좋은 일부 봉수대는 해맞이 관광지가 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봉수는 천편일률적으로 복원돼 봉수 원래의 모습을 잃어버리거나, 마구잡이로 파헤쳐졌다.

책은 “전국에 산재한 봉수를 연차적으로 조사해 원형이 잘 보존된 유적을 우선 선별해 숲길 따라 등산로를 개설하고, 봉수 주변의 잡목을 벌채한 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면 국가 브랜드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한다. 저자가 직접 발품을 팔며 찍은 봉수대 사진 400컷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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