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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민통선 안의 섬’ 강화 교동도

입력 : 2014-11-20 18:15:06 수정 : 2014-12-01 15: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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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륙교 연결 4개월…
사람도 가게도 함께 늙어가는 … ‘추억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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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사람들에게 다리는 필생의 숙원이다. 자식이 아프거나 며느리가 출산할 때 병원이 있는 뭍으로 나가는 배편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러야 했던 얘기를 할 때 할머니의 얼굴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섬의 낙후와 불편을 해결하는 데 다리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로 여겨졌다. 다리가 놓이면 섬의 모든 것이 바뀐다. 그런데 그 변화가 꼭 섬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만은 아니다.

교동도에도 7월 본섬인 강화도와 연결되는 길이 3.44㎞의 교동대교가 놓였다. 강화도가 김포와 강화대교로 이어져 있으니, 교동도는 이제는 육지나 다름없는 셈이다.

현재 행정구역으로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이 섬은 서울에서 지척이고 우리나라에서 14번째로 큰 섬이지만, 민통선(민간인출입통제선) 안에 자리해 섬 안으로 들어가려면 엄격한 통제를 받았다. 더구나 조수간만의 차가 커 간조 때는 3, 4시간씩 배 운항이 정지됐고, 물이 덜 빠질 땐 직선으로 15분(강화도 창후리 선착장∼교동도 월선포 선착장)이면 닿을 뱃길을 1시간 넘게 돌아가기도 했다.

그래서 오랫동안 외면받았고 개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바다 건너 바로 보일 정도로 강화도가 가깝지만, 다리가 최근에야 놓인 데는 북한 땅과 워낙 가까운 데다 민통선 안에 있다는 점이 주요한 이유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섬 속의 섬’, ‘서울 근교의 낙도’로 불린 교동도에는 오래전 시간이 멎은 듯한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다. 교동도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라는 대룡리의 대룡시장도 흑백영화에서나 보던 1960∼70년대 시골 장터의 모습이다. 고스란히 쌓여 있는 이 세월의 더께가 중장년층의 향수를 자극했고, 이색적인 풍경을 찾는 도시인의 발길을 모으기 시작하며 제법 알려진 여행지가 됐다.

연륙교가 놓인 지 4개월여가 지난 이즈음, 교동도는 어떻게 변해가고 있을까.

뱃시간과 간조시간 등을 미리 파악할 필요가 없으니 여행 준비는 한결 간소해졌다. 그러나 다리가 놓인 후 교동도 입구의 검문은 더 까다로워진 것 같다. 무장 군인이 지키는 초소를 여러 번 지나는데 민통선 출입신청서(이름·행선지·연락처·출입기간·차량번호)를 작성하고, ‘교동지역 임시출입증’을 발급받아야 통행이 가능하다. 출입시간도 일출 30분 전부터 일몰 30분 후까지다.

동산약방을 55년째 지킨 나의환 할아버지
좁은 골목 안으로 빛바랜 골동품 같은 가게들이 늘어선 대룡시장. 이 골목의 최연장자는 ‘동산약방’의 나의환(83) 할아버지. 55년째 이 작고 허름한 약방을 지키고 있다. 교동이 고향인 그는 서울에서 대학을 마친 후 고향에 터전을 잡았다. “예전 처음 약방을 열 때 골목이 지금도 그대로야. 이곳은 변한 게 하나도 없어.”

서울에서 지척이지만 수십년 전 시골 장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던 강화 교동도에 다리가 놓이며 이 섬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교동도 대룡시장의 상징과도 같은 교동이발관은 아직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주변에는 넉 달 새 도회지풍의 커피숍 2개가 새로 생겼다.
50년째 교동이발관을 운영중인 지광식 할아버지.
동산약방 건너편 ‘교동이발관’도 옛날 그 방식대로 이발을 하고 있다. 이 가게를 50년간 운영한 지광식(76)씨는 “다리가 놓이며 토·일요일이면 관광객이 늘어났어”라고 말한다. 일부러 기념 삼아 여기 와서 이발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배 타고 강화의 치과 한번 가려면 하루가 다 갔지. 근데 지금은 버스가 다니니 아침에 나갔다가 점심 먹고 들어오니 많이 편해졌어.”

다리가 놓이며 대룡시장에 가장 먼저 새로 생긴 것은 커피숍이다. 이어 커피숍이 하나 더 생겼고, 중국집 한 곳도 새로 들어섰다. 외지 관광객이 늘어나자 식당도 외관을 새로 단장하고, 메뉴도 늘렸다.

강화상회 전경
그러나 연륙교가 놓인 후 이 섬에 좋은 일만 생긴 것은 아니다. 옷가지를 파는 ‘강화상회’의 박정자(63)씨는 “예전에는 내것, 네것 없이 살았는데, 요즘은 문단속에 신경을 쓴다”고 말한다. 원래 문을 잠그지 않고 살았는데, 다리 개통 후 농기구를 트럭에 실어가는 도난사고가 잇따르며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또 외지에서 들어온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며, 자동차 속도에 익숙지 않은 노인들이 깜짝깜짝 놀라는 일도 많다고 한다. 교동도의 유적과 등산로에는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가 늘어나고 있다. 몇 년 뒤 다시 찾으면 교동도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수십년 전 고향의 장터를 추억하게 하는 옛 풍경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교동도(강화)=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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