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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재의천기누설] 시간, 공간, 중력이 부리는 우주의 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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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1-17 21:26:06 수정 : 2014-11-17 21:3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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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은 시간에 영향을 미친다
웜홀은 중력으로 만들어진다
시간여행은 하기 싫어도 누구나 해야 한다. 아파트 거실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는 순간에도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 거실이 비행기 1등석보다 못할 것이 뭐가 있는가.

넓지, 소파도 편하지, TV 화면도 크지, 전용 냉장고와 화장실도 있지, 흔들리지도 않지…. 이 정도면 ‘특등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스튜어디스가 무섭고, 시키는 일도 해야 하고, 기내식을 먹고 무조건 맛있다고 해야 하는 단점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모두 ‘특등석 타고 시간여행을 한다’ 생각하면 삶이 더욱 여유롭게 느껴지지 않을까.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위원
옛날에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민요들이 요즘 들어 새삼스럽게 들려온다. 이제 60을 바라보는 나이 탓인가. ‘노들강변 봄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에다가 무정세월 한 허리를 칭칭 동여서 매어나 볼까….’ 시간여행을 정지하겠다는 발상 아닌가. 하지만 이것은 노래가사일 뿐 불가능하다. 시간은 꼬박꼬박 미래를 향해 흐른다.

‘북한의 소녀시대’ 모란봉악단 공연을 유튜브에서 보니 ‘배우자’라는 노래가 있었다. ‘시간은 쉼 없이 흐르네, 그러니 돌아보지 마시고, 금같이 귀중한 분초를 아껴갑시다… 우리의 과학과 기술을 꽃펴갑시다….’ 북한 노래치고 쓸 만하지 않은가.

우리가 체험하는 시간의 ‘속도’는 주관적이고 감성적이다. ‘좋은 시간’은 빨리 가고 ‘나쁜 시간’은 늦게 간다. 예를 들어 옛날에는 아내가 여행가면 시간이 참 빨리 갔다. 술 퍼먹다 보면 금방 아내가 돌아와 짜증이 날 정도였다. 그런데 요즘은 시간이 너무 늦게 간다. 음식 만들고, 음식물 쓰레기 버리고, 고양이 밥 주고 …. 아내 몫 집안일까지 하며 ‘고난의 행군’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좋은 시간’을 늘리고 ‘나쁜 시간’을 줄이는 지혜는 없을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시간의 속도는 중력의 영향을 받는다. 요즘 인기가 폭발하고 있는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면 중력이 강한 블랙홀 근처의 1시간이 중력이 약한 외곽에서 7년이 되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블랙홀로 시공간이 중력에 끌려 ‘에스컬레이터’처럼 계속 들어간다고 상상해보자. 그 위에서 어떤 사람이 2초마다 사과를 하나씩 밖으로 던진다면 밖에서 사과를 받는 사람은 5초마다 사과를 하나씩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시간 지연의 원리다.

시간여행과 공간여행 중 우리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은 공간여행이다. 공간여행은 하기 싫으면 안 할 수도 있다. 현실에서 ‘특등석’은 그만두고 1등석 타기도 어렵지만 스튜어디스가 상냥하고, 일도 안 시키고, 기내식을 안 먹어도 혼나지 않는다.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공간여행도 중력의 영향을 받는다.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웜홀은 중력이 만드는 통로이다. 웜은 영어로 ‘worm’이니 웜홀은 ‘벌레구멍’이라는 뜻이다. 이 학술용어는 사과의 한 쪽 표면에서 다른 쪽 표면으로 기어가는 벌레가 구멍을 통해서 더 빨리 갈 수 있다는 것에서 비롯됐다. 뉴턴 때문에 중력을 설명할 때 늘 사과가 인용되는데 이제 사과 속 벌레구멍까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원님 덕에 나발 부는 격이다.

상대성이론에서 웜홀은 원래 블랙홀과 블랙홀을 연결하는 통로였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한쪽에서 블랙홀 속으로 들어가 살아남아서 다른 쪽 블랙홀에 도달한다고 하더라도 빠져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에는 무엇이든지 내놓기만 하는 ‘화이트홀’이 출구에 있어야만 했다. 그래서 과학소설 작가들은 화이트홀을 ‘발명’했다. 즉 블랙홀과 웜홀은 과학적 근거가 있지만 화이트홀은 없는 것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는 입구와 출구에 블랙홀이 아예 없는, 새로운 모습의 웜홀이 등장했다. 이는 이 영화의 물리학을 자문한 미국의 물리학자 손(Thorne) 박사의 주장에 근거를 둔 것이다.

이처럼 시간과 공간과 중력이 삼위일체가 돼 펼쳐가는 우주의 모습은 이제 우주시대의 문화, ‘우주문화’를 지배하고 있다. 블랙홀이란 단어는 이제 너무 많이 나와 식상할 정도다. “할머니, 블랙홀은요 무엇이든 무섭게 빨아들이는 거래요. 빛도 빨아들인대요.” “그래? 절대로 가까이 가지 마라, 큰일 나!” 이런 대화가 할머니와 손자 사이에서 있음 직한 현실이다.

그뿐인가. 블랙홀, 초신성, 빅뱅…. 우리나라 가요계도 우주가 돼 간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블랙홀 노래를 부른 가수는 내가 아는 한 이정현이다. 이정현은 1999년에 발매된 1집에서 자기가 작곡한 ‘GX 339-4’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이 이름은 밤하늘에서 강한 X-선을 방출하는 블랙홀 후보의 카탈로그 번호다.

강한 중력을 묘사하고 있는 가사를 일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지금 다가오는 아픔을 즐기며 너의 힘 때문에 한 점으로 오므라든 너의 힘 안쪽의 막대한 힘 때문에 난 저 빛 속으로도 탈출 못하지….’ 매우 과학적이고 곡을 들어보면 1999년 작품이라고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우리나라에는 이처럼 우주문화의 풀뿌리들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본격적인 우주영화, 우주공원, 우주음악, 우주미술 등이 없는 우리나라…. 영화 ‘인터스텔라’를 봤더니 괜히 마음만 답답해졌다.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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