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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호칼럼] 공부하는 이들 ‘사회적 배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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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1-16 22:57:18 수정 : 2014-11-17 00: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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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기숙사 건립 마찰 안타까워
곤궁한 학생들 처지 이해했으면
며칠 전 고3생들은 십수년 만의 기록적인 한파 속에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렀다. 수능을 치를 때까지 유치원의 영어 공부 빼고도 장장 12년을 입시에 매달렸기에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쳤을 게다. 그러나 대학을 입학만 하면 누린다는 자유와 낭만은 잠시뿐 다시 그들은 학점 따기 경쟁하랴, 등록금과 생활비 마련하랴, 취업 준비하랴 심신이 피곤하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김난도의 역설이 그나마 위안거리다.

그렇지 않아도 고달픈 대학생들에게 고통을 안기는 일이 생겨 안타깝다. 최근 서울의 유명 사립대학들이 교내외에 기숙사 건립을 추진하자, 인근 원룸주인 등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주민의 표를 의식해서인지 건축허가를 반려하는 관할 구청도 있다. 주민들은 수입 감소 외에도 사생활 침해와 환경파괴를 내세우나 본질은 돈 문제인 것 같다. 공익과 사익이 충돌할 때 무엇을 우선할 것인지조차 논란이 되는 세태가 안타깝다.

‘기숙사 방을 얻으려면 전생에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우스개가 나올 정도로 서울 등 수도권 대학의 기숙사 사정은 심각하다. 지방은 그나마 수용률이 20%를 넘으나 수도권은 겨우 14%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자산이 부족한 데다 등록금 인상도 법으로 규제돼 있어 대학이 자체 재원으로 기숙사 건립에 나서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공공기숙사가 건립되기 시작했다. 대형 기숙사가 신축되면 인근 학생들에게 방을 제공하던 주민의 수입이 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주민들이 기숙사 신축을 막는 집단행동을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주민들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고 불만인 모양이다. 그러나 학생들의 궁박한 처지를 생각해야 하는 대학으로서는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기숙사를 점진적으로 확대할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

이번 사태로 대학에 대한 사회의 인식의 일단을 보게 돼 씁쓸하다. 대학 진학률이 80%를 육박하는 요즘 대학은 더 이상 존중의 대상이 아닌 것 같다. 그래선지 대학에 대한 사회의 배려도 예전만 못한 것 같다. 점차 사회는 혈세 지원을 받는 대학에 대해 더 많은 공헌을 요구한다. 대학은 이런 분위기에 맞춰 캠퍼스를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제공하거나 시민을 위한 교양 강좌를 제공하는 등 나름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 인근 주민 일부는 대학에 안정적 수입까지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셈이다. 대도시에서는 대학가 주변뿐만 아니라 서민들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건설이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고 그만큼 임대사업자의 수입은 줄 수 있다. 그렇다고 공공임대주택 건설을 막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정병호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
대학이 태동한 유럽에서는 세속권력과 종교권력이 대학에 대해 존중과 배려를 함으로써 근대문명을 이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158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는 최초의 대학이자 법학 연구로 유명한 중세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의 유학생들과 교수들을 보호하기 위해 ‘특허장’(Authentica Habita)을 반포했다.

바바로사 황제는 ‘학도들이 학문을 연마하는 곳으로 안전하게 이동하고 그곳에서 안전하게 체재할 수 있도록’ 보장했다. 황제는 ‘그들이 학문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방인이 되고 부(富)를 잃고 곤궁해지거나, 생명의 위험에 처하며, 때때로 이유도 없이 탐욕스러운 자들에 의해, 심지어 동향 사람의 채무변제까지 요구받고 신체에 위해(危害)가 가해지고 있음’을 직시하고 ‘영구히 유효한 법률에 의해 누구든지 학도(學徒)들에게 불법행위를 자행하지 말 것’을 명하고 위반 시 엄한 벌로 다스릴 것을 경고했다. 황제는 ‘학식으로써 세인(世人)을 계도하는 학도들이야말로 선(善)을 행하는 자’이므로 응당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보았다.

시간과 공간은 멀리 떨어져 있으나 곤궁한 처지의 학도들에 대한 황제의 배려가 감동적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한 나라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다. 공부하는 동안에는 대체로 경제적으로 곤궁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선진 각국에서는 학생들에 대해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대학 인근 일부 주민의 기숙사 신축 반대 움직임을 보며 공부하는 이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접이 안타깝기만 하다.

정병호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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