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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현칼럼] 파헤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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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1-09 22:09:49 수정 : 2014-11-09 22: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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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세 낭비 사업 국회 감시 강화를
알뜰 살림 ‘영기준예산제’ 전환 필요
얼마 전 2014년도 국정감사가 끝났다. 여전히 비신사적이고 준비가 부족한 의원들의 질문과 더러는 무성의하고 후안무치한 답변이 난무했다. 다만 맹탕국감 사이에서도 실낱같은 희망이 보이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시인한 방위산업 부패와 정부 각부처에 만연해 있는 부정부패·무책임·축소은폐·무능·무사안일 등에 대해 나름대로의 사실 인정과 평가가 있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사실 인정만으로는 부족하다. 문제점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제도 보완으로 이어져야 한다. 역사적으로 국회보다 행정부가 먼저 생겨난 전형적 행정국가인 우리나라의 경우 국회가 법률을 통과시키고 예산을 승인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더욱더 중요한 것은 행정부에 대한 감시감독 기능이 살아나 의회보다 경험·지식·예산·인력이 우월한 행정부를 바로 견제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가 살아날 수 있다.

이번 국감에서 파헤쳐진 몇 가지 국정실패 사례를 살펴보면 방위산업의 부조리, 4대강사업의 실패, 자원외교의 혈세낭비, 그리고 늘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공공기관의 파렴치한 경영실태 등이다. 4대강사업이 원래 취지대로 사업목적을 달성하려면 지금까지 들어간 돈보다 앞으로 더 많은 돈이 들어가야 한다고 한다. 또 자원외교란 이름으로 수익성이 거의 없고 매장량이 고갈됐거나 타산이 맞지 않은 해외업체에 투자한 사업을 현 정부의 ‘공공혁신’ 방침대로 처분하려고 하니 엄청난 손실을 감수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거듭되는 적자경영에도 국민의 혈세를 거리낌 없이 펑펑 쓰는 정부산하기관의 부도덕·무경영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조창현 (사)정부혁신연구원 이사장·전 한양대 석좌교수
이 모든 문제는 실패한 정책을 결정한 담당자들의 책임을 엄중히 묻지 않는 우리나라의 징벌(懲罰)체제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보다 더 깊은 뿌리는 능력이나 경륜보다 맹목적 충성심에 초점이 맞춰진 비실적주의 인사제도와 권력 앞에서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우리 관료사회의 폐쇄적 문화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듯 생(生)과 사(死)의 갈림길에서도 군주 앞에서 해야 할 말을 서슴지 않았던 많은 청렴하고 박식한 선비를 가진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나라였다. 그런데 인권이 옹호되고, 신분이 보장되며, 언로가 살아 있으며, 더욱이 지식의 보고(寶庫)인 대학과 연구기관이 넘치는 현 시점에서 왜 나라를 좀먹는 공직자를 양산하고 있는 것인지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는 아직도 부정부패·부실 등 각종 사회악을 제보하는 일에 취약하다. 혈세인 정부예산을 낭비하는 것이나 국민으로부터 수임한 권력을 남용하는 것은 사기업에서 사업주가 회사 돈을 횡령하거나 배임하는 것보다 훨씬 무거운 범죄이다. 그런데도 이 파렴치범들을 언제까지 지금처럼 눈감아줘야 하는가.

지금 우리는 미증유의 재정적 위기에 처해 있다. 지난 10년간 우리는 적자예산편성을 면치 못하고 있으며, 박근혜정부 5년간 국가부채가 216조원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적자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없는 세원’을 찾으려는 노력보다 ‘있는 예산’을 촘촘히 짜 알뜰한 살림을 꾸리는 예산제도 도입에서 출발해야 한다. 즉 전년도 답습식인 현행 예산제도에서 탈피해 모든 것을 ‘제로’(0)에서부터 새로 시작하는 영기준예산제도(ZBB·zero-based budgeting system)로의 일대전환이 필요하다. 우리 예산 가운데는 이미 정책적 목적이 달성됐거나 그 정책의 실효성이 입증되지 못한 사업이 적지 않을 뿐 아니라 정책 목표가 훌륭한 경우라도 시행할 만한 인적자원이나 수용여건이 준비되지 않은 사업이 수두룩하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물론 이러한 사업은 철저한 성과 중심의 평가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조창현 (사)정부혁신연구원 이사장·전 한양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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