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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일의 풍찬노숙] 벤츠 연구소 담벼락에서 캠핑해봤나요?

입력 : 2014-11-08 15:31:33 수정 : 2014-11-08 15: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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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첫 캠핑을 성공리에 마치자 자신감이 붙었다. 계획대로 호텔이나 민박대신 캠핑으로 여행경비를 줄일 수 있게 됐다. 또, 디젤 엔진에 수동변속기의 연비 좋은 렌터카도 있으니 마음이 놓인다. 됐다. 이제 본격적으로 아우토반을 달려보자.

▶ 슈트트가르트 캠핑장에서 만난 캠퍼의 차. 오래된 폴크스바겐 비틀을 깔끔하게 리스토어해 타고 있었다.

▶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슈투트가르트로 달리는 길. 서울에서 전주정도의 거리다.

아침을 챙겨먹고 프랑크푸르트를 떠났다. 이미 여러 번 출장으로 들렀던 곳이고 시가지 관광에는 큰 의미를 찾지 못해서다. 자동차 관련 업계에 종사하면 꼭 가본다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가 있으니 언제가 또 올 듯 한 느낌. 과감하게 길을 달리기로 했다.

오늘은 아우토반을 본격적으로 즐길 예정. 목적지는 자동차로 세계 최초로 특허를 받은 메르세데스-벤츠를 보러 간다. 내비게이션으로 확인해보니 약 2시간 거리. 가장 빠른 길은 아우토반으로 남쪽으로 만하임을 거쳐 하이델베르크를 지나간다.

독일 아우토반은 통행료가 없다. 그러니 고속도로 입구와 출구가 무척 단순하다. 길을 달리다 코너 한번 꺾으면 고속도로고 다시 나오면 동네길이다. 몇 번을 들고나도 부담이 없다. 슈투트가르트까지는 204km, 서울에서 전라북도 전주(195km)쯤 되는 거리다.

유럽에서는 큰 도시 인근이 아니면 차가 막히는 일이 거의 없다. 아우토반은 가끔 공사나 대형 사고가 일어나면 한도 끝도 없이 막히기 시작하지만 어차피 운이다. 라디오를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고 이따금 나오는 도로 안내 전광판에 그림으로 나와야 무슨 일인가 앞에서 일어났음을 짐작할 뿐이다.
▶ 독일 아우토반에는 유럽을 가로지르는 각종 화물차가 달린다. 이 차는 독특하게도 트레일러에 트레일러를 싣고간다.

오전에 슈투트가르트까지 단숨에 달리기로 결심했다. 점심 지나서는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을 둘러볼 예정이다. 어제 프랑스에서 올라오던 길을 다시 돌아 내려가니 조금 억울하다. 그래도 아우토반 운전은 재밌다. 1차로에서는 절대 정속주행은 없다. 뒤차가 다가오는 느낌이 나면 포르쉐 할아버지라도 길을 비켜준다. 프랑스에서 온 통통한 모양의 1.6리터 디젤 엔진 시트로앵에게도 길을 비켜준다. 덕분에 편도 3차로의 아우토반은 질서정연하다. 아마도 유럽 대륙을 가로지르는 듯 보이는 대형 화물차들은 역시 3차로를 지켰다. 2차로는 서행하는 대부분의 차들이 주행했고 1차로는 추월을 위해 달리는 차들이다. 속도 무제한의 표시가 나오면 불꽃같이 달려 나가는 차도 있다. 원칙대로 달리니 아무도 스트레스 받지 않고 아무도 경적이나 상향등을 켜지 않는다.
▶ 무슨일인지 고속도로 쉼터에서 서로를 위로하는 사람들. 옆에는 서비스를 위해 출동한 것으로 보이는 차가 서 있다.

한 시간쯤 달리니 비가 온다. 날씨가 급하게 변했다. 고속도로에서 앞이 안보일 정도다. 잠시 휴식을 위해 정식 휴게소는 아니고 일종의 쉼터 같은 공간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차에서 내린 듯 한 남녀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옆에는 BMW의 서비스 자동차가 서 있다. 아마도 차량에 뭔가 문제가 일어난 듯하다. 날씨도 쌀쌀하고 비도 내리는데 안타깝다.

아우토반을 조금 달리니 2차로가 제일 재미있다. 3차로에 독특한 화물차를 구경하는 재미도 좋고 1차로를 달려 나가는 자동차와 모터사이클을 구경하는 것도 즐겁다. 오래된 공랭식 폴크스바겐 비틀부터 비틀과 똑같이 빼닮은 오래된 포르쉐까지 길을 달린다. 오래된 차를 타는 게 돈이 없거나 무엇인가 인생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차를 좋아해서 타는 느낌이 든다. 오래된 차라도 깨끗하고 깔끔하다.
▶ 슈투트가르트로 들어서는 길. 아우토반은 요금을 받지 않는다. 들어가고 나오는 과정도 단순하다.
▶ 슈투트가르트에 들어서자마자 등장한 벤츠 전시장.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아 슈투트가르트 시내로 들어간다. 도시 초입에 메르세데스-벤츠의 커다란 유리건물이 나와 혹시나 박물관일까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전시장이다. 느낌인지 몰라도 이곳에 오니 벤츠가 유독 눈에 띈다.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은색 머리의 신사가 30년은 넘은 듯 한 벤츠를 타고 지나간다.

시내 구경을 하며 내비게이션의 안내가 끝나는 곳까지 가보니 아뿔싸. 메르세데스-벤츠의 연구소 안으로 들어와버렸다. 어떻게 이럴 수가. 정문부터 꽁꽁 잠가서 군부대보다 엄격하게 통제하는 우리나라 자동차 회사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처음 보는 동양 여행자가 렌터카를 타고 세계 최고의 프리미엄 자동차 벤츠 연구소까지 들어와버렸다. 실수다. 나의 목적지는 박물관이다. 거꾸로 돌아 나가며 경비실 같은 곳에 박물관을 물어본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지 친절하지만 간략하게 길을 알려준다.
▶ 벤츠 박물관 앞 건물. 박물관 인근 건물도 모두 둥근 형태로 지었다.
▶ 오스트리아 벤츠 딜러의 딸 이름 ‘메르세데스’를 딴 최초의 차가 전시되어있다.
▶ 오래전 벤츠 공장의 모습.

벤츠 박물관은 구조가 독특하다. 지하에 주차를 하고 올라가면 티켓을 구입한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까지 한 번에 올라간다. 나선형으로 만든 길을 내려오다 보면 100년 전 자동차의 탄생부터 최신 벤츠의 컨셉트카와 디자인 컨셉 모델까지 모두를 둘러보게 돼 있다. 고틀립 다임러와 칼 벤츠의 만남부터 오스트리아에서 벤츠 자동차를 판매하던 딜러의 딸의 이름 ‘메르세데스’ 자동차에 붙는 과정까지 생생하게 당시의 차와 함께 설명하고 있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이들에겐 성지다. 물론 메르세데스-벤츠가 세계 최초의 자동차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벤츠만큼 역사와 전통을 제대로 정리한 회사가 또 있을까 싶다. 벤츠에 비해 절반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자동차회사에 아쉬운 것은 한두 개가 아니지만 이런 박물관은 정말 부러운 시설이다. 박물관에는 아이들이 견학중이다. 에어백의 작동 과정을 직접 눌러보며 체험하고 자동차가 어떻게 발전했는지도 직접 만져보며 확인한다.
▶ 갈매기 날개처럼 열린다하여 이른바 ‘걸윙도어’를 탑재한 메르세데스-벤츠 300SL.

박물관을 나서려고 시계를 확인하니 저녁이 가까워진다. 캠퍼는 일찍 잘 곳을 찾아야한다. 텐트를 치는 대부분의 캠핑장은 장소를 지정해주지 않는다. 그저 편한 곳에 텐트를 치라고 말한다. 물론 여럿이 함께 갔거나 캠핑카를 대동했다면 자리를 정확히 지정받고 전기와 상하수도를 연결해야한다. 하지만 텐트는 그런 과정이 필요 없으니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

오늘은 미리 예약해둔 캠핑장으로 간다. 메르세데스-벤츠 본사와 담벼락 접한 곳이다. 벤츠의 테스트 트랙이 캠핑장 담벼락이다. 슈투트가르트 서쪽에 있는 캠핑장은 네카어 강 동쪽에 있다. 축구경기가 열리는 메르세데스-벤츠 아레나와 가까워 2006년 독일 월드컵 때에는 관람객이 몰리기도 했다.
▶ 슈투트가르트 시내에 들어서니 유난히도 벤츠가 눈에 띈다.

이틀째인데도 요령이 생겼다. 캠핑장에 들어가기 전에 물과 식료품을 미리 사야한다. 커다란 슈퍼마켓을 찾는 기술도 늘어서, 주택이 늘어선 동네로 차를 계속 몰고 가면 어딘가에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역시나 벤츠 박물관에서 나와 북서쪽으로 달리다보니 캠핑장 입구를 조금 지난 곳에 슈퍼마켓이 나왔다. 붉은 양념으로 절인 소고기 스테이크와 모둠 샐러드, 과일과 음료를 사서 캠핑장으로 들어섰다.

캠핑장 사무실로 찾아가니 절차도 어제와 똑같다. 여권을 내니 유창한 영어로 설명을 해준다. 사람 1명에 6.5유로, 차 한 대에 2.5유로 등등 13유로쯤이다. 여럿이 함께 사용하는 한인민박의 도미토리룸이 하루에 20~30유로씩 하는 것과 비교하면 반값이다.
▶ 벤츠 연구소와 담벼락을 마주한 캠핑장의 입구.
▶ 유럽에서 텐트치고 캠핑하는 이들은 소수다. 대부분 캠핑카, 일명 카라반을 타고온다. 그래서 텐트는 어지간한 곳에 적당히 치라고 권한다. 나무 밑에 자리잡은 오늘의 숙소.
▶ 유럽 캠핑장의 화장실, 세면대, 세탁실은 무척 깨끗하다.
▶ 비록 돈을 내야하지만 드럼세탁기가 여러대 있어 오랜 여행을 해도 문제가 없다.

이곳 캠핑장은 인기가 좋은지 사람이 많다. 텐트 칠 자리도 마땅치 않다. 두어 바퀴 돌다가 누군가 작은 텐트를 쳐놨기에 그 옆에 자리를 잡았다. 커다란 나무 아래다. 가로등도 있고 자동차를 가깝게 세울 수 있어서 물건을 보관하거나 싣고 내리기에도 편리했다. 철제 울타리에는 빨래를 잠시 널었다. 아침부터 마르지 않은 상태로 뒷좌석에 널어두었던 그것들이다.

간단하게 고기를 굽고 와인을 곁들여 저녁식사를 한다. 샐러드를 먹고 커피도 한잔 마시면서 여유로운 저녁시간을 즐긴다. 잔디밭이라 비가와도 그다지 걱정은 없어 보인다. 옆 텐트에는 사람이 없는지 차도 없고 인기척도 없다.
▶ 차와 텐트가 가까우면 여러모로 편리하다.
▶ 테이블이 있었다면 보다 품위있는 식사가 가능했겠지만 모든 캠핑장비를 현지에서 구해 사용하니 불편함 정도는 참아야한다. 그래도 맛있다.

캠핑장을 둘러보는데 한쪽 담벼락 옆이 어수선하다. 캠핑카에서 길다란 사다리를 들고 달려가는 아저씨도 보인다. 아이는 카메라를 들고 따라간다. 무슨일인가 싶어 기웃거렸다. 멀리서 자동차 배기음이 점점 다가온다. 매우 빠른 속도로 달리는 소리다. 이내 지나간 자동차는 또 다시 멀어지는 배기음을 남기고 조용해진다.

담벼락 너머는 메르세데스-벤츠의 테스트 트랙이었다. 벤츠 연구소에서 주행시험을 하는 공간이다. 우리나라에도 경기도 화성에 비슷한 공간이 있고 회사마다 연구소 내부에 꽁꽁 숨겨둔 공간이 있다. 하지만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 벤츠가 이렇게 캠핑장 담벼락 뒤에서 출시도 안한 신차를 테스트한다니 당연히 궁금해진다.
▶ 캠핑장 담벼락 너머로 엿본 벤츠의 테스트 트랙.
▶ 줌렌즈 할아버지라도 찍기 어려운 구도에서 차 소리가 들리면 무작정 셔터를 눌렀다. 겨우 한 장 건진 차 사진인데 초점이 맞지 않았다.

사다리를 갖고 올라간 금발머리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나도 한번 올라가도 될까?” 아이는 차에 정신이 팔렸고 아래서 지켜보던 아이 아빠가 올라가라고 손짓을 한다. 사다리에 한발씩 걸친 아이와 나는 멀리서 달려오는 차 소리를 기다린다. 카메라를 들어 셔터를 눌렀다. 차가 너무 빨라서인지 초점도 잡기 전에 사라졌다. 벤츠의 어떤 세단처럼 보이는데 정확하진 않았다.

아이와 아빠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왔단다. 가족이 함께 여행 중인데 큰아이랑 엄마는 시내에 나갔다고 한다. 아이 아빠는 자동차를 좋아한다며 세계 최고의 자동차는 이탈리아에 있다고 강조한다.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등 수퍼카 이름을 줄줄이 댄다.
▶ 캠핑장에 매점은 있다. 하지만 늦게까지 하지 않으니 유용하지는 않다. 캠핑장에 들어가기 전에 수퍼마켓을 들러 필요한 것을 사두자.
▶ 이틀째 되니 캠핑장의 캐러밴이 부러워지기 시작한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신차 몰카를 찍고 돌아오니 텐트 옆에 우락부락한 독일 남자가 저녁을 먹고 있다. 옆에 작은 텐트를 쳐놓은 장본인이다. 뒤에 세운 차는 폴크스바겐 비틀. 오래된 차를 잘도 꾸몄다. 은색의 차는 무척 깨끗하고 실내도 새로 만든 듯 깔끔하다. 온몸에 문신을 한 남자는 옆에 신경도 쓰지 않는다. 말을 걸어보려고해도 각종 동물을 그려 넣은 문신과 그보다 더 어마어마한 덩치에 기가 죽어 말도 못 붙였다. 금세 밤은 찾아왔고 텐트 캠핑객에게는 고독한 시간이 찾아왔다. 가로등이 아니면 작은 랜턴 하나에 의지해야하니 밤에 할 일이 별로 없다. 노트북에 하루 일과를 잠시 정리하고 세탁실로 가서 몇 개 되지 않는 빨래를 시작했다. 세면대는 물론이고 세탁실도 무척 깔끔하다. 한쪽에는 다리미판과 다리미도 놓여있다.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니 피로가 사라진다. 텐트로 돌아와 알 수 없는 독일어, 이탈리아어 수다 속에서 잠이든다. 캠핑 이틀째도 무사히 끝나간다. 모두 합쳐 십수만원짜리 캠핑장비가 의외로 튼튼하다. 덕분에 이슬은 맞지 않고 지낸다.

슈트트가르트=이다일 기자 aut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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