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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칼럼] 여행문화의 이면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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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1-02 21:50:59 수정 : 2014-11-02 21:5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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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락철 고속도로 휴게소 매우 불편
여성들 편안히 볼일 볼 수 있게 해야
봄 소식은 들로부터 오고 가을소식은 산으로부터 온다. 그래서 봄은 올라가고 가을은 내려간다고 말한다. 가을이 깊다. 바야흐로 단풍철이다. 강원도의 단풍은 10월 말이 절정이라고 하고, 남쪽 지역의 단풍은 11월 중순이 절정이라고 한다. 굳이 단풍 구경을 떠나지 않더라도 집 안에서 아파트 단지 정원을 내려다보아도, 또 사무실에서 창밖으로 눈을 돌려 길거리를 바라보아도 도시가 온통 붉고 노랗게 물들어 있다.

그렇지만 산과 들로 나가 바라보는 단풍은 도시의 길거리와 공원의 단풍을 바라보는 것과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자연 속에 한결 더 깊이 들어가는 느낌이다. 바라보는 단풍이 아니라 내 몸도 마음도 함께 물드는 단풍이다. 그런저런 이유로 나는 요즘 길 위에 있을 때가 많다. 일부러 단풍 구경을 떠나서가 아니라 가을이면 이런저런 문화행사가 많다. 그중에 거절하지 않고 참가하는 행사가 책과 함께 하는 행사들이다.

이순원 소설가
그중에서도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나 내가 태어난 고향 마을의 도서관과 함께 떠나는 ‘길위의 인문학’ 행사 경우는 문학 속의 현장이든 역사 속의 현장이든 하루 멀리 책 속의 현장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이라 몸은 여간 피곤하지 않아도 마음은 그 어떤 여행보다 즐겁고 알차다. 내가 쓴 소설 속의 무대를 독자들과 함께 가기도 하고, 어린 시절에 읽었던 국민소설과 같은 ‘소나기’의 아련한 감성을 찾아 공간여행과 시간여행을 함께 하기도 하고, 허난설헌과 허균 남매의 비운의 삶과 문학을 찾아 밀리는 길 위에 멀리 대관령을 넘었다가 늦은 밤 돌아오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런 작품 속의 현장과 역사 속의 현장만 보고 오는 게 아니라 오가는 길에 마주치는 들녘도 바라보고 서로 사람들이 부딪치는 모습도 주의 깊게 바라본다. 여름 피서철에만 사람들이 많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봄여름가을 구분 없이 많이 움직인다. 그런 움직임 속에 어떤 새로운 모습으로 정착되어 가고 패턴화되어가는 여행의 문화 같은 것도 발견한다.

여행객이 많으면 휴게소에도 사람들이 넘쳐난다. 사람들이 넘쳐나 밥을 못 사먹는 경우는 없다. 휴게소를 운영하는 회사가 사람이 넘쳐 밥을 못 먹게 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조금만 넘친다 싶으면 어떻게든 시설을 확장한다. 문제는 화장실이다.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마다 봄여름가을은 전쟁이다. 봄의 꽃놀이철도 그렇고 가을 단풍철도 길을 떠나는 여행객들 중엔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많은데, 게다가 화장실을 이용하는 시간도 여자들이 더 많은데 화장실 규모는 남녀가 똑 같다. 그러다 보니 주말과 휴가철이면 남자화장실에까지 여자들이 밀고 들어온다. 어쩔 수 없는 신체적 생리현상이다.

올가을에도 그런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며칠 전에는 휴게소 직원이 남자 화장실 입구에 서서 남자 화장실로 밀고 들어오려는 여자 손님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밀어내는 모습도 보았다. 남자화장실로 여자들이 들어와 불편하다는 민원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남자화장실로는 들어오지 못하고 어떤 경우에도 비운 채로 대기하고 있어야 할 장애인 화장실을 점거(?)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이런 모습은 정말 딱해 보이지 않는가.

돈 받는 화장실이라면 휴게소들마다 이미 시설을 확충했을 것이다. 그들이 돈을 놓칠 리가 없다. 그러나 돈이 들어오는 곳은 식당뿐이니 식당만 확장할 뿐 화장실 앞에 승객들이 샛노란 얼굴로 몸을 꼬며 이삼십 미터 넘게 길게 줄을 서서 전쟁을 치러도 평일에는 그보다 한산하다는 이유로 시설을 확장하지 않는다.

시설의 기준은 한산할 때가 아니다. 봄여름가을은, 특히 주말이면 매일 이런 전쟁을 치른다. 휴게소는 여행객을 상대로 음식을 파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 아니다. 그보다 먼저 갖추어야 할 것이 있다. 여행객들이 운전 중에 경직된 몸을 풀고 편안하게 용무를 보고 쉬게 하는 것이 먼저이다. 대한민국의 고속도로 휴게소들은 이 부분에서는 거의 모두 낙제점이다. 여자들이 여행 중 편안하게 용무를 볼 수 있게 하라. 이게 우리나라 휴게소들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다.

이순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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