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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칼럼] 구들장 달구듯 생선 굽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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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0-27 21:52:38 수정 : 2014-10-28 0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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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운 콩가루 집안, 집터 옮긴다고 달라질까
개헌 탁상공론 앞서 정치개혁이 먼저
바람 잘 날 없는 콩가루 집안이 있다. 아버지는 도박장을 전전하고 어머니는 춤바람에 빠져 있고 학업에 뜻이 없는 자식들은 딴짓거리로 청춘을 불태운다. 어쩌다 집에서 얼굴을 마주쳐도 대화 한마디 없이 서로 소 닭 보듯한다. 이웃의 손가락질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가족들이 어느날 갑자기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동네 보기 창피하다”며 ‘개과천선’을 다짐한다. 집안 분위기 바꾼답시고 고작 생각해낸 것이 가구 위치를 바꾸거나 도배를 다시 하거나 집 리모델링을 하거나 그도저도 안 되면 아예 이사를 가는 것이다. 그런다고 콩가루 집안이 웃음꽃 피는 화목한 가정으로 달라질 수 있을까.

김기홍 수석논설위원
정치권을 달구는 개헌론이 꼭 그 짝이다. 개헌 얘기가 잊을 만하면 불쑥 튀어 나온다. 그 까닭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서까래를 새로 얹고 기둥을 다시 세운다고 지금의 정치를 확 바꿔놓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외려 개헌해야 한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이들의 속내를 뒤집어보는 뒷담화가 난무한다. 여당 대표가 외국에서 “정기국회가 끝나면 개헌 논의가 봇물 터질 것”이라고 불쑥 질렀다가 다음 날 “제 불찰이었다”고 꼬리를 내리고 청와대는 “당 대표 되시는 분이 실수로 언급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당 대표 등에 칼이나 꽂는 한편의 액션 코미디가 작금의 개헌 논의를 하루아침에 시중의 웃음거리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개헌, 좋은 얘기이기는 한데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으로 다짜고짜 들이댔다가 산통을 깨고 말았다. 정치하는 짓이 늘 이 모양이다.

개헌론의 요체는 권력구조 개편이다. 대통령 중임제든 이원집정부제든 내각제든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승자독식 구조인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개선하자는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 제도가 정치 부문을 비롯한 국가 발전 전반에 걸림돌이라는 지적이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렇다고 100% 맞는 것도 아니다. 집권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우리를 아연실색케 하는 청와대의 국정운영이 헌법상의 결함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집권세력의 국정 철학이나 능력에서 근본 원인을 찾아야 한다. 국민 마음을 다 담아내지 못하는 종지그릇만한 리더십이 문제다. 협량의 리더십은 헌법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에게 고통을 주고 나라 발전을 가로막는 것은 퇴행적인 정치행태다. 당장 뜯어 고쳐야 하는 것은 입으로만 국민을 떠들고 뒤에서 사익을 좇는 사이비 정치다. 이런 정치는 제쳐두고 헌법을 고쳐 대통령제를 손질하기만 하면 당장 새 정치가 펼쳐질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뒤바뀐 탁상공론이다. ‘정치 혁신’을 입에 달고 사는 정치권이 지금까지 한 것은 거의 없다. ‘특권 내려놓기’도 좋고 ‘셀프 개혁’도 좋다. 어느 것 하나라도 몸으로 보여준다면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믿겠건만 입에서 나오는 것은 죄다 공염불이다. 무노동 무임금, 면책·불체포 특권 포기, 세비 삭감,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선거구 획정위 신설 등등 ‘공약(空約) 리스트’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역만리에서 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이름에 솔깃해 하는 국민들 보기 부끄러운 줄도 모를 것이다.

개헌, 하기는 해야 한다. 그러나 순서가 있다. 먼저 국민의 뜻이 모아져야 한다. 아궁이에 불을 때면 가마솥이 데워지고 불길이 고래를 타고 구들장을 덥히고 마침내 아랫목 윗목을 골고루 달궈주듯 국민이 개헌에 공감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정치는 신중하고 정교해야 한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작은 생선 굽듯이 해야 한다는 노자의 가르침이 그것이다.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함부로 건들고 뒤적거리면 부서져 먹을 것이 없게 된다. 맛있는 생선을 기다리는 국민들은 여태껏 쫄쫄 굶고 있다. 개헌을 하려거든 국민이 신뢰하는 정치부터 만들어 놓아야 한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아무리 봐도 쑥대밭이 된 집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은 기대난망이다. 산 좋고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으로 집터라도 옮겨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김기홍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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