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박정진의청심청담] 역사조작의 명수, 일본

관련이슈 박정진의 청심청담

입력 : 2014-10-27 21:48:16 수정 : 2014-10-28 00:13:12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구석기 연대 끌어올리려다 망신
日초암차도 매월당 초암차가 원류
일본문화를 보면 처음부터 일본적인 것은 토착주민의 남방적인 요소가 강하다.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한 모든 문화는 대개 중국 혹은 한국에서 들어간(혹은 들여간) 북방문화의 문화적 세례를 받은 것들이다. 그중에는 중국에서 직접 들어간 것도 더러 있지만 대체로 한국을 거쳐 들어간, 한국이 소화해서 전해준 중국문화이다.

문화의 흐름으로 볼 때 한국은 일본문화의 시혜자이다. 그래서 일본 법화경 종파의 어느 종교지도자는 한국을 ‘은혜의 나라’라고 한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국호도 실은 한반도와 대륙에서 일어난 삼국통일 전쟁 과정에서 패한 백제 세력이 대거 일본으로 건너감으로써 새롭게 이름 붙여진 것이다. 유전자 분석을 하면 한국보다 더 한국적인 것이 일본이라고 한다. 

박정진 객원논설위원·문화평론가
그래서 일본인은 항상 한반도에서 건너간 ‘이주민의 시각’을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그들은 한국을 고향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일본의 역사서인 ‘서기(書記)’나 ‘고사기(古事記)’의 경우도 실은 백제인의 시각에서 쓴 것이다. 마치 백제의 역사가 일본역사의 연장인 양 쓴 것이다.

말하자면 몸은 일본 땅에 있어도 의식은 항상 한반도에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적반하장으로 역사를 뒤집어버리는 것이 일본인의 역사관이다. 이주민의 시각에서 본토를 그리워하면서도 자신을 쫓아내거나 이주케 한 사람들을 미워하고 복수하고자 하는 정한론적 시각을 갖게 된다. 임진왜란이나 일제 침략은 그러한 소산이다.

일본의 고대사 콤플렉스는 특히 한국 고대사의 폄하, 식민지화에 맞추어져 있다. 임나일본부설이나 패수 대동강 설은 일본 식민사학의 결정적 조작이다. 일본 구석기의 연대를 70만년 전으로 끌어올리려고 시도한 후지무라 신이치(藤村新一)의 구석기 조작 사건은 일본 학문에 망신을 준 희대의 조작사건이다.

일본 문화의 장점은 대륙에서 들어온 문화를 철저히 자기화하는 데에 있다. 바다 건너 있으니 대륙의 침략으로부터 피해 있었던 점도 십분 활용했겠지만 자신의 문화를 장식화·규격화하는 미의식을 강화해왔다. 특히 일본의 시각적 미의식은 오늘날 세계적이다.

근대에 들어 일본이 서구에 자신의 것으로 자랑한 것 중 대표적인 문화가 소위 ‘젠(zen)’으로 소개한 선(禪)불교와 다도(茶道)이다. 일본 다도의 철학을 만들어낸 사람은 교토학파의 니시다기타로(西田幾多郞)와 스즈키 다이세쓰(鈴木大拙)이다. 이들은 일본 철학과 일본 다도를 현대적으로 완성한 인물이다.

이에 앞서 일본 다도 종가를 이룬 인물은 센리큐(千利休, 1522∼1591)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차두(茶頭)로 있으면서 임진왜란을 반대하다가 미움을 싸서 자결의 명을 받은 센리큐는 한국계 일본인이었다. 소위 센리큐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하는 초암차는 매월당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의 초암차가 일본화된 것이다.

센리큐가 한국계라는 사실을 처음 밝힌 학자는 동아시아 미술사의 대가인 존 코벨이라는 미국학자였다.

“다도에서 가장 유명한 센리큐(千利休)의 천(千)은 한국식 성이며 그의 조부는 조선 세조 치하에 해당하던 시기 일본 요시마사 쇼군 막부에서 교역을 하던 한국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라쿠자기(회전판을 사용하지 않고 주걱으로 형태를 만들고 특수 가마에서 한 개씩 구워내는 라쿠 가문의 연질토기)는 센리큐의 안목 아래 계획되어 ‘조지로’라는 한국인 도공의 아들이 제작한 것이었다.”

일본 다도의 전통을 거슬러 올라가면 센리큐 위에 다케노 조오, 무라타 주코, 잇큐 소준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런데 일본다도의 원조인 잇큐소준의 어머니가 고려의 궁녀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도 코벨이다.

잇큐의 어머니가 고려인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교토 대덕사(大德寺) 진주암(眞珠庵)에 체류한 존 코벨이 9년의 연구 끝에 알아낸 사실이다. 결국 일본 초암차의 전통에는 2명의 한국계가 원조와 완성자로서 있다. 여기에 더하여 초암차 자체가 매월당에서 비롯된 것으로 최근의 연구는 밝혀내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일본의 초암차는 조선의 것을 수입하여 자신의 것으로 토착화하고 장식하고 규격화한 것이다.

사무라이 문화도 한국에서 건너가서 일본화한 것이다. 사무라이는 고조선에서 천제 사당을 지키는 무사를 ‘삼랑’(三郞)이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구체적으로는 신라 삼랑의광(三郞義光)에서 비롯되었다. 한반도에서 왕조의 개국이나 권력투쟁,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일본으로 망명·이주한 무인들이 많았다. 사무라이는 삼랑의 일본 발음이다.

고대에서부터 일본 지배계층의 대부분이 한국에서 이주한 인물이고, 그들로부터 문화적 세례를 받은 일본이 한국이 고대에서부터 식민지였던 것처럼 조작하는 것은 그들의 고대문화 콤플렉스의 발로이다. 일본 사람들은 중국이 원류인 것은 참을 수 있어도 한국이 원류인 것을 받아들이면 수치스러운 모양이다. 물론 양심적인 일본 학자들도 있지만 이들은 소수이다.

일본 문화의 지층을 보면 가장 아래에 신도(神道)가 있고, 그 위에 사무라이(武士) 정신이 있고, 그 위에 선종(禪宗)이 있고, 그 위에 다도(茶道)가 있다. 그런데 이 네 개의 지층을 이루는 것 중에서 한국에서 건너가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고려불화를 일본불화라고 하거나 중국불화인 것처럼 행세해온 일본은 한국 고대사에서만큼은 조작자이다.

박정진 객원논설위원·문화평론가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