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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이룬 평범한 꿈… 행복한 ‘숙자’

입력 : 2014-10-24 19:58:32 수정 : 2014-10-26 09:5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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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촌 여성의 삶다룬 ‘보통이름 숙자’전 열려 “평생 못 입어본 웨딩드레스를 이렇게 입어봤으니 너무 좋아. 아직도 실감이 안 나.”

지난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견지동 평화박물관에서 열린 ‘보통이름 숙자’ 전시회. 기지촌 출신 서모(56·여)씨는 감격에 겨워 말을 잇지 못했다. 서씨의 시선이 다다른 곳에는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그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게 ‘어릴 적 꿈’ 이었다고 했다. 한참 사진을 바라보던 그는 “이렇게 하얀 드레스를 입고 결혼하는 것이 소망이었는데 이룰 수 없었다. 다른 사람에겐 평범한 일이겠지만 우리에겐 꿈이었다”며 “반쪽이지만 소원을 이룰 수 있어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평화박물관과 햇살사회복지회가 공동주최한 전시회는 평택 미군 기지촌에 거주하는 여성들의 삶을 사진과 영상, 설치예술로 표현했다. 햇살사회복지회는 기지촌 여성 지원단체이다.

기지촌은 6·25전쟁과 그 이후 주한미군이 한반도에 정착하면서 형성된 기지주변 동네이다. 이곳에 거주하던 일부 여성들이 생존을 위해 성매매에 나섰다. 그래서 기지촌은 부끄럽고 애환이 서린 단어가 됐다.

전시작품을 낸 작가 이성주씨는 “수치스러움, 부끄러움을 대변하는 할머니들의 삶은 한국의 현대사에 잊어서는 안 되는 부분”이라며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만큼 기지촌 할머니들의 삶 역시 역사의 일부분”이라고 말했다.

전시회 오픈 행사에는 작가 서원경씨 등 40여명이 참석했다. 기지촌 출신 여성 3명도 함께 자리했다. 전시회의 한 관계자는 “기지촌 여성들은 ‘숙자’라는 이름을 예명으로 가장 많이 사용한다”며 “그래서 전시회명을 ‘보통 이름 숙자’로 지었다”고 설명했다.

전시회의 하이라이트는 기지촌 여성 5명의 ‘못 이룬 꿈’을 찍은 사진이다. 전시장 한 쪽 벽면에 놓인 사진 속에는 저마다의 꿈을 입은 기지촌 여성들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평범한 가정 주부’가 꿈이었다는 한 여성(80)은 사진 속에서 앞치마를 두른 채 포대에 싼 아기를 안았다. 아이를 갖는 것이 꿈이었지만 임신이 될 때마다 아이를 지울 수밖에 없었다는 그는 진짜 아기를 대하듯 포대를 바라보며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려서 무용을 했다는 남모(63·사진)씨는 50년 만에 붉은색 발레복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 자신 있는 표정으로 포즈를 취한 남씨의 사진은 많은 이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간호사복을 입은 여성과 ‘배우’의 꿈을 되살려 포즈를 취한 여성의 사진도 눈길을 끌었다.

사진작가 서원경씨는 “기지촌 여성들이 현실은 처참했을지라도 저마다 가슴 속에 간절한 꿈이 있었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며 “비록 연출 사진이지만 그들이 소망했던 삶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찰나라도 행복했기를 빌었고, 작은 선물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시장을 찾은 이모(33·여)씨는 “할머니들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자신 있게 사진을 찍은 모습을 보니 감동적이다.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비해 기지촌 문제에는 사회적 관심이 덜한데 많은 이들이 와서 보고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용성(25)씨는 “전시를 통해서 기지촌 여성들의 일생과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며 “그분들의 답답함이 조금이라도 풀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해성 평화박물관 운영위원은 “한국 사회는 기지촌에 대해 기억을 지우는 일에 몰두했는데 그런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며 “기지촌 여성들의 삶이 우리 역사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기억 속에 남겨놓기 위해 전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다음 달 19일까지 계속된다. 30일에는 기지촌 여성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숙자 토크’ 가 진행된다.

김유나·최형창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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