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성폭력 아픔 딛고 세상 품에 안긴 사람들

입력 : 2014-10-24 19:56:18 수정 : 2014-10-24 19:56:18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열림터 기획/김지현 등 지음/이매진
우리들의 삶은 동사다/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열림터 기획/김지현 등 지음/이매진


현주가 성폭력을 당하기 시작한 건 8살 때부터였다. 가해자는 아버지였다. 이혼 후 단둘이 살게 되자 폭력을 일삼았다. 어머니는 보호막이 되어주지 못했다. 오히려 잦은 매질을 하는, 형태만 다를 뿐 아버지보다 더 폭력적인 사람이었다. 현주는 형제도, 친구도 없었다. “사람들 속에서 살아본 적 없이, 아버지나 어머니, 또는 외할머니하고 단둘이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현주가 아버지의 성폭력에서 벗어난 것은 17살 때였다. 깊은 산속에 있던 아버지 집에서 맨발로 도망쳐 나온 뒤였다.

현주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모여 생활하는 열림터에서 2년 가까이 살았다. 생활은 안정적이었고 공부를 해 자격증도 땄다. 열림터를 나갈 때 사회에서 잘 생활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가질 만했다. 하지만 여러 직장을 전전했고, 인간관계를 너무 힘들어 했다. “성폭력 피해 자체보다 사회적 관계를 한 경험이 없어 더 힘들어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적응해갔다. 남자친구를 사귀었고, 야간 대학에 들어가 친구를 사귀었다. 현주는 “또래들하고 똑같은 ‘보통의 삶’을 살고 싶다는 욕구를 실현”하며 삶의 현장에서 계속 살아가고 있었다. 현주의 적응 과정을 지켜본 열림터 활동가는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프로그램, 치료가 끝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자기 방식과 환경이 충돌하는 시간을 온전히 겪고 때로는 적응하고 때로는 부적응하며 어쨌든 계속 살아가는 것. 그것이 중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적었다. 그래서 “성폭력 피해자의 후유증은 ‘피해 뒤의 부작용’보다 환경에 적응하는 변화의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삶이 정해진 개념이 아니듯 피해자들의 삶도 어떤 증상에 가둘 수 없는 것”이 된다. 책의 제목은 이런 인식에서 연유한다.

1994년 9월 문을 연 성폭력 피해자 쉼터를 거쳐간 16명의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그들이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 활동가들의 기억과 관찰을 한데 묶었다. 열림터에서의 생활, 수사와 재판 과정, 자립, 후유증, 어머니, 가해자 등이 키워드다. 끔찍한 폭력을 겪고, 극복하는 과정을 직접 경험한 피해자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가득하다.

강구열 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