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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사람들, 노숙인] ‘빅이슈’ 판매원의 희망가

입력 : 2014-10-23 18:39:00 수정 : 2014-10-23 22:5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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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현장 밀착취재
“한부 한부 팔때마다 절반 저축 재기 밑천 차곡차곡 쌓여가죠”
“안녕하세요! 희망을 주는 잡지 빅이슈입니다.”

지난 16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안국역 앞. 노숙인 출신 구영훈(48)씨를 대신해 기자가 빅이슈를 들고 판매를 호소했지만 지나가는 사람 그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옷을 세 겹이나 껴입었지만 추위에 몸이 쪼그라들었다. 몰아치는 바람은 잡지를 넣어놓은 수레를 수차례 쓰러트렸다.

노숙인 자활을 돕는 잡지 빅이슈 판매원인 구영훈(48)씨가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안국역 앞에서 빅이슈를 판매하고 있다.
최형창 기자
수레를 다시 세우는 구씨에게서는 희망이 엿보였다. 그는 2011년부터 안국역 6번 출구에서 빅이슈를 판매하고 있다. 노숙인 자활을 돕는 잡지인 ‘빅이슈’는 그의 생명줄이다. 유명인들의 재능기부로 만들어진 빅이슈는 노숙인들만 팔 수 있다. 판매원들은 2500원에 빅이슈를 구매해 거리에서 5000원을 받고 판다. 이를 통해 노숙인들의 자활 계기를 마련한다는 취지다.

쌀쌀한 날씨에 많은 이들이 그냥 지나쳤지만, 그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일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겁다”고 말했다.

남부럽지 않은 가정에서 자란 구씨는 군에서 제대할 때까지 가난을 몰랐다. 하지만 IMF(국제통화기금) 외환 위기 당시 아버지 사업이 몰락하면서 순식간에 거리로 나앉았다. 20년 동안 거리를 전전하던 구씨는 2010년 한 봉사단체의 소개로 빅이슈를 만나게 되면서 삶이 제자리를 찾게 됐다.

처음 빅이슈를 판매할 때는 부끄러운 마음에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구씨는 “누군가 다가와 ‘얼마냐’고 물어 얼떨결에 판매를 하고 나니 ‘아 내가 정말 할 수 있는 건가’란 의심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한 줄기 희망이 보였다”고 회고했다.

4년차 판매원인 그에게 이제는 제법 단골 손님도 생겼다. 이날 구씨로부터 잡지를 산 한 중년 여성은 5000원과 함께 옆 리어카에서 산 군밤 한 봉지를 손에 쥐여주었다. 구씨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연신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그는 “처음에는 사람들이 노숙인이었다는 이유로 거부감을 가지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먼저 다가와줘서 고마울 때가 많다”며 “절 보고 노숙인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게 됐다는 사람들을 만나면 뿌듯하다”고 말했다.

구씨는 하루평균 20권을 판다. 5만원 정도의 수입 중 절반을 저축한다. 저축은 빅이슈 판매원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 중 하나다. 그 덕에 지금까지 판매원 30명이 임대주택에 들어가는 등 노숙생활을 청산했다. 구씨도 그간 모은 돈으로 2012년 강서구 화곡동의 임대주택에 입주했다. 2011년에는 세계 노숙인 축구대회인 ‘홈리스 월드컵’에 한국대표로 출전했다. 지난해 4월부터는 노숙인 밴드 ‘봄날’에서 드러머로 활약 중이다. 제2의 인생이 열린 것이다.

구씨는 “빅이슈를 팔면서 자신감이 생기고 많은 기회도 얻었다”며 “다른 노숙인들에게 이런 기회가 돌아가고, 인식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형창 기자 call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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