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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통행식 회의는 소통이 아니라 독백
국정 신뢰 높이려면 국민과 함께 걸어야
세종은 소통의 달인이었다. 신하들의 말에 늘 귀를 열었다. “경들의 의견은 어떠한가?” 세종은 입버릇처럼 묻고 또 물었다. 평소 즐겨 했던 말은 “너의 말이 참으로 옳고 아름답다”였다. 명백해 보이는 사안일지라도 신하들의 의견을 들은 뒤에야 결정을 내렸다. 세종은 무지렁이 백성의 말이라도 귀담아들었다. 뭇사람의 말을 다 듣고서 옳은 것을 가려 취하면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설령 대화 도중 무례한 언행이 나오더라도 넓은 마음으로 감쌌다.

배연국 논설위원
이런 일이 있었다. 형조참판 고약해가 어전 회의에서 세종과 언쟁을 벌이다 “정말 유감입니다. 전하께서 제대로 살피지 못하시니 어찌 신이 조정에서 벼슬을 하겠습니까” 하고 소리쳤다. 무례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제 말을 받아주지도 않으면서 도리어 신이 잘못되었다고 하시니 참으로 실망이옵니다.” 언성을 높인 고약해는 그만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신하들 앞에서 왕을 공개적으로 조롱한 셈이다. 민주화한 오늘날에도 대통령이나 재벌 회장 앞에서 이런 무례를 범했다면 아마 자리를 보전하기 어려울 터이다. 하지만 성군의 대응은 달랐다. “고약해를 벌주면 과인이 신하의 간언을 싫어한다는 오해가 생길까 염려된다”며 불문에 부쳤다.

소통은 범인(凡人)을 위대한 인물로 만든다. 세종은 임금의 오류를 막고 지혜를 넓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의 위대한 정치도 탁월한 소통능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일자무식의 칭기즈칸은 생전에 “내 귀가 나를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글조차 읽지 못하는 유목민의 우두머리를 세계 정복자로 키운 것 역시 소통이었다.

소통의 지혜를 가슴에 꼭 새겨야 하는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에게는 불통의 그림자가 아직 짙다. 국민들은 국정 수행에서 가장 잘못된 점으로 소통 부족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물론 대통령 자신도 애는 쓰고 있다. 규제개혁 끝장 토론을 열어 민간의 의견을 듣는다. 하지만 이런 이벤트성 토론으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본질은 그의 외곬 소통 방식이다.

대통령의 소통은 일방통행이다. 국무회의나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정제된 자기 주장만 쏟아낸다. 쌍방의 의견 교환이 결핍된 회의는 소통이 아니다. 독백에 불과하다. 대통령은 주권자인 국민에게 국정 현안을 설명할 의무가 있다. 박 대통령은 그 의무를 회피한다. 취임 후 1년8개월 동안 대통령이 국민 앞에 선 것은 고작 세 번이다. 첫해에는 국회의 법안 처리 지연을 비판하는 담화가 유일했다. 올 들어서도 연두기자회견과 세월호 대국민담화 두 번뿐이다. 당선 후 1년 동안 이명박 전 대통령의 15번, 노무현 전 대통령의 18번과 너무 대비된다. 미국 대통령은 매월 평균 두 번 이상 기자회견을 연다.

야당과 세월호 유족들은 침몰 사고 후 대통령의 ‘7시간 부재’를 공격한다. 동의할 수 없는 행동이다. 국정에서 중요한 것은 7시간이 아니다. 5월19일 세월호 담화 이후 국민 앞에 서지 않은 ‘3768시간의 부재’가 더 큰 문제다.

대통령의 애국심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는 부지런하다. 일과 후에도 보고서를 챙겨 읽는다. 이런 자질만으로 ‘첫 여성’ 대통령을 넘어 ‘위대한’이란 수식어를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 높은 신뢰가 없다면 아마 힘들 것이다. 신뢰는 국민과의 소통에서 나온다. 소통은 위대한 대통령으로 인도하는 자질이자 필수 덕목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가 발전과 국민 행복이 선순환의 구조를 이루는 새로운 시대의 출발선에 서 있다. 우리가 그 길을 성공적으로 가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민이 동반자의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고 선언했다. 취임사의 다짐은 어디로 갔는가. 대통령은 초심으로 돌아가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내가 ‘국민과 함께’ 길을 걷고 있는가?”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속담이 있다. 대통령은 혼자 걷는 자리가 아니다. 대통령 앞에는 국민통합과 민족통일의 먼 길이 놓여 있다. 그 길을 가려면 국민과 함께 걸어야 한다. 대통령은 걸음걸이를 바꿔야 한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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