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대기업직원에서 휠체어럭비 선수로…강민의 도전

입력 : 2014-10-22 16:39:51 수정 : 2014-10-22 16:39:51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2014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휠체어럭비 결승전이 열린 22일 인천 선학체육관. 한국과 일본 대표팀이 금메달을 걸고 격돌한 이날 한국팀 벤치에 머무르던 강민(40)은 경기 내내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팀의 주력 선수 중 한 명임에도 대회를 앞두고 장애등급 심사에서 장애 정도가 낮다는 평가를 받아 경기에 많이 출전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었다.

장애인체육의 단체 종목에는 출전 선수 전원의 장애등급 총합을 일정 수준 이하로 맞추도록 요구하는 규정이 있다. 장애가 심할수록 숫자로 표기하는 등급은 낮아진다.

이날 강민은 4피리어드 총 32분 가운데 5분여만 뛸 수 있었다. 한국은 결국 일본에 40-60으로 패해 은메달에 머물렀다.

강민은 경기 후 "아쉽고, 분하고, 억울하기도 하다"며 "일본이 잘하긴 했지만 등급 문제만 없었으면 10점 이내로 겨뤄볼 만한 상대였다"고 진한 아쉬움을 숨기지 못했다.

바퀴살 위에 갑옷 같은 철판을 덧대고 상대 선수와의 격렬한 충돌을 일삼는 휠체어럭비는 장애인체육에서 가장 격렬한 종목 중 하나다.

아이스하키의 '보디 체크'와 비슷한 휠체어 간의 충돌이 다반사로 일어나다 보니 휠체어와 선수가 함께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장면도 종종 나온다.

휠체어럭비만의 격렬함은 강민에게 강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한양대 건축공학과 93학번으로 삼성중공업 건설사업부에 근무하던 강민은 오토바이 레이서로도 활동할 만큼 스포츠, 스피드, 짜릿함을 즐겼다.

대기업 사원으로 평탄한 삶을 살아가던 그에게 불운이 닥친 것은 2002년. 사랑하는 오토바이와 함께 교통사고를 당했고, 이후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은 그는 휠체어를 벗어날 수 없게 됐다.

재활 수단으로 운동을 택한 강민은 휠체어농구를 처음 접해 장애인 전국체전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장애는 생겼어도 타고난 운동신경과 끈기까지 잃지는 않은 강민은 이후 휠체어럭비로 전향해 장애인 전국체전에서 두 차례 정상에 올랐다.

나이로 볼 때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이번 대회에서는 오직 금메달이 목표였지만 결국 일본의 벽을 넘지 못했다.

강민은 "나이도 있고 해서 내년부터는 국가대표 생활을 계속해야 할지를 고민해봐야 한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그는 '다시 국가대표를 한다면'이라는 전제를 달기는 했지만 "뉴질랜드만 잡으면 세계 대회에 나갈 수 있고 충분히 뉴질랜드와 견줄 실력은 된다"며 다음 목표를 은연중 밝히기도 했다.

강민은 "약간 시기가 늦은 감은 있다"면서도 "기회가 된다면 유종의 미를 꼭 거두고 싶다"며 무릎 위에 올려뒀던 공을 어루만졌다.

<연합>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