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국기연의 월드와이드뷰] “美 군사력 퇴보로 北 비핵화 해법 요원해져”

관련이슈 국기연 특파원의 월드와이드 뷰

입력 : 2014-10-21 18:36:26 수정 : 2015-02-23 21:46:09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20년 전 제네바 합의 주역들
北 폭격 일촉즉발 상황 증언
1994년 여름 북한의 핵 개발로 제2의 한국 전쟁 위기가 조성됐다. 윌리엄 페리 당시 미국 국방장관은 북한의 영변 핵 시설을 정밀 타격(surgical strike)하는 군사 작전을 짰다.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만나 대화의 물꼬를 텄고, 그해 10월21일 북·미 제네바 합의가 이뤄졌다.

1994년 10월21일 체결된 북·미 제네바 합의의 주역인 한승주 전 외무장관, 조엘 위트 전 국무부 북핵 담당관, 로버트 갈루치 전 북핵 대사,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미대사 (왼쪽부터) 등이 20일(현지시간) 미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SAIS)에서 당시 한반도 위기 상황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사진=국기연 특파원
긴박했던 역사의 격랑을 헤쳐온 주역들이 20일(현지시간) 미 워싱턴 소재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SAIS)에서 자리를 함께했다. 이 대학원이 주최한 ‘북·미 제네바 합의 2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는 당시 진지하게 검토했던 북한 폭격론에 관한 증언이 쏟아졌다.

제네바 회담의 미국 측 수석 대표였던 로버트 갈루치 전 북핵 대사는 “북한에 대한 군사 행동 계획이 실질적이었으며 언제든지 돌입할 태세가 갖춰져 있었다”고 증언했다. 갈루치는 북한이 사용후 연료봉 재처리 등 도발을 했다면 미국이 무력 대응에 나섰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임스 레이니 당시 주한 미국대사는 “북한이 미국의 대북 제재를 전쟁 행위로 간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상황에서 사태가 매우 위중했다”고 말했다. 레이니는 “우리가 북한 지도부의 마음을 읽을 수가 없었지만 미국은 북한 지도부의 행동이 초래할 위험성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게리 럭 당시 주한 미 사령관도 이날 세미나장에 연결된 전화를 통해 “우리가 당시 3만7000명이던 주한 미군을 지원할 병력 증파 계획을 수립했다”고 증언했다. 럭은 “우리가 군사적 대응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며 북한이 호전적인 행동을 하면 ‘자! 우리가 간다’고 했을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한승주 당시 외무장관도 “그때 나는 전쟁이 얼마나 임박했는지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한 전 장관은 “한국으로서는 미국의 북한에 대한 군사 대응 카드가 실제 선택 사항 중 하나인지, 아니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려는 전략인지 알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대니얼 폰만 당시 미 국가안보회의(NSC) 비확산담당 특보는 “페리 당시 장관은 전쟁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북한에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북·미 제네바 합의 주역들의 일치된 증언을 통해 북핵 폭격론의 실체가 다시 한번 드러난 셈이다.

문제는 미국이 당시 제2의 한국전쟁을 일으키는 전략을 짜면서도 한국 정부와 사전에 일절 협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1999년 일본 요미우리신문과 회견에서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과 전화 회담에서 북한 핵 시설을 공격하지 말라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클린턴에게 “당시 한국군은 한 명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으며 내가 반대하지 않았으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의 이런 주장에 대해 세미나장에서 기자와 만난 제네바 합의 주역들은 고개를 저었다. 사실 관계가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는 미국의 대북 군사적 위협 카드가 거의 무용지물이 됐다. 한 전 장관은 기자에게 “북한은 1994년 서슬 퍼렇던 미국이 무서워 협상장에 나왔을 수 있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져 미국이 그런 카드를 꺼낼 수도 없게 됐다”고 말했다. 국제 사회에서 군사력과 지도력이 퇴조하는 미국을 더 이상 겁내지 않는 북한이 사실상 핵무기까지 보유하고 있는 게 한국이 현재 직면한 안보 현실이다.

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
  • 블랙핑크 로제 '여신의 볼하트'
  • 루셈블 현진 '강렬한 카리스마'
  • 박은빈 '반가운 손 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