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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무용단 호드웍스의 ‘새벽’
남녀 두 명씩 무용수 네 명이 등장한다. 성큼성큼 옷을 전부 벗는다. 속옷 하나 남지 않는다. 두 명씩 짝을 이룬 남녀가 의미 없이 기묘한 동작을 이어간다. 움직일 때마다 주름이 접힌다. 지방이 출렁이고, 근육이 꿈틀 댄다. 만지지 말아야 할 곳도, 보이지 말아야 할 곳도 없다. 물구나무를 서고, 엉덩이를 하늘로 들어올리고, 다리를 활짝 벌린다. 동작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숨은 가빠진다. 몸은 온통 땀으로 번들거린다. 초반에 탐색하듯 상대의 몸을 조종하던 무용수들은 후반부에 빠른 속도로 공진한다. 일방적으로 흐르던 움직임들이 소통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독립된 개인으로 떨어져나온다.

17∼18일 서강대학교 메리홀 무대에 오른 헝가리 무용단 호드웍스의 ‘새벽’은 공연 전부터 관심을 모았다. 이 작품은 올해 서울세계무용축제(시댄스) 참가작. ‘벌거벗은 몸’으로 몸의 동물적 특성을 편견 없이 드러낸다는 설명이 눈길을 잡아끌었다. 지난해 5월 헝가리에서 초연됐고, 그해 헝가리 최고 현대무용으로 선정됐다. 무용 예술에서 누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촌스러운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짐짓 모른 척하는 것 역시 또 다른 점잔 빼기에 불과하다. 그러니 공연 전 미리 만난 안무가 아드리엔 호드와 무용수 네 명에게 가장 먼저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왜 누드를 선택했는가.

“옷은 항상 정보를 전달해요. 그가 누구이고 어떤 역사·문화적 배경을 가졌는지요. 이런 정보를 걷어내고 싶었어요. 누드로 공연해보니 굉장히 단순하고 순수했어요. 한편으로는 무대에 오르니 벌거벗은 몸 자체가 하나의 의상이 되더군요. 동시에 상반된 현상이 일어난 거죠. 누드로 사람들을 선정적으로 도발하려 한 건 아니에요. 무대에서 춤추는 동안 근육이나 피부, 주름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고 싶었어요. 벗은 몸을 과시하며 보여주려는 안무가 아니랍니다.” 안무가 호드는 같은 움직임이 속도와 시간, 길이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려 했다. “처음에는 벗은 몸으로 보여주는 단순하고 추상적인 놀이를 구상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평등’이다. 

헝가리 호드웍스 무용단의 ‘새벽’을 안무한 아드리엔 호드(가운데)와 무용수 차바 몰나르, 훌리아 가라이, 마르시오 카나바로, 훌리아 하디(왼쪽부터)가 공연을 앞두고 밝게 웃고 있다.
김범준 기자
“남녀 무용수가 동등한 힘과 권력을 가져요. 남성이 더 강하거나 여성이 이끄는 식의 차별이 없어요. 또 몸의 어디를 만지면 안 된다는 제약·금지도 없어요. 몸에서도 위계 질서 없이 움직임을 만들어가요.”

성적인 암시를 주는 장면들 역시 등장한다. 호드는 “성적인 장면뿐 아니라 아이들이 노는 모습, 사교댄스, 영적인 느낌을 주는 동작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공연은 내내 밝은 조명 속에 진행된다. 음악도 처음에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침묵 속에 무용수들의 숨결과 몸이 만드는 소리들만이 공기를 채우는 듯하다. 호드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다 보이도록 햇빛처럼 강한 조명을 썼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독일, 프랑스, 루마니아 등 이미 6개국에서 공연됐다. 당연히 나라마다 반응이 달랐다.

“헝가리 초연은 성공적이었어요. 관객이 처음 10∼15분은 놀라워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당혹스러움을 내려놓고 작품에 빠져들더라고요. 스웨덴에서는 처음부터 웃더군요. 관객들이 정말 즐거워하던데요.”

옷을 입지 않고 춤출 때는 피부에 와닿는 느낌이 다르다. 옷이 땀을 흡수하지 않으니 당연하다. 무용수 마르시오 카나바로는 “무대에서 내 땀내와 체취가 민감하게 느껴졌다”며 “이게 무용수가 가진 또 다른 예민한 감각을 깨워주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무대에서는 집중하고 몰입해야 해요. 육체적으로 정말 힘들어요. 상대방을 다치게 할 수 있고 옷도 입지 않았기에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파트너와의 호흡, 둘러싼 관객을 느끼며 에너지를 쏟아야 하죠. 모든 순간이 거대한 여행 같아요. 아주 바쁜 여행이에요.”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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