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이다일의 풍찬노숙] 빈손으로 유럽 캠핑을 떠나다

입력 : 2014-10-20 09:39:56 수정 : 2014-10-20 09:39:56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스페인 산티아고에서 걷기에 몰입했던 나는 다음 목적지로 파리를 선택했다. 프랑스와 독일을 차로 가로지를 계획이다. 무작정이다. 다만, 목적지를 파리로 정한 건 이곳 산티아고에서 때마침 있는 비행기 표가 파리행이기 때문이고 독일로 향하기로 결심한건 속도 무제한의 도로 아우토반이 있기 때문이다. 정말 단순하다. 여행에선 단순함이 편할 때가 많다. 큰 고민 없이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 독일 마인강변의 캠핑장. 가장 저렴한 캠핑용품으로 유럽에서의 오토캠핑을 시작했다.
아니 아직 오르지 못했다. 유럽 도시를 오가는 저가항공을 선택했는데 출발시간을 넘겨도 탑승 수속을 하지 않는다. 우리 비행기에 말썽이 있는 모양. 결국 파리에서 대타로 비행기를 보내줬다. 저녁에는 파리에 도착해야 처음 보는 숙소를 찾아갈텐데. 걱정이 앞선다.

밤9시가 가까운 시간. 파리행 비행기를 탔다. 파리에 한인 민박을 예약해두긴 했는데 차가 문제다. 물론 인터넷을 통해 AVIS렌터카를 예약했다. 초행길이니 비싸지만 내비게이션도 예약했다. 문제는 영업시간. 파리 샤를드골공항의 렌터카 센터는 밤 12시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비행기는 연착되고 얼추 계산해보니 12시까지 빠듯하다.
▶ 비행기 창문 밖으로 파리 시내가 보인다. 하지만 늦었다. 렌터카 영업시간은 12시까지다.
▶ 끝까지 남아있던 시트로앵 C3 피카소. 소형 디젤엔진과 5단 수동변속기로 연비가 좋은 모델이다.
파리에 도착해 렌터카 픽업을 위해 넓은 공항을 뛰어 가로질렀다. 다행이 네모반듯한 시트로앵 C3 피카소가 남아있다. 그런데 내비게이션은 없다고. 분명 예약했는데... 좀 전까지 영어로 안내하던 렌터카 회사 직원이 갑자기 불어로 길을 안내한다. 도무지 알아 들을 수 없다. 지도를 복사해 달랬더니 에펠탑과 몽마르트 언덕이 예쁘게 그려진 관광안내지도를 가져다준다. 이걸로 한인 민박집을 어떻게 찾아가란 말인가.

놀랍게도 해냈다. 관광 안내지도와 지하철 노선도를 겹쳐 보면서 파리 시 외곽에 있는 민박집을 찾아갔다. 시간은 이미 새벽 2시에 가깝다. 내일 당장 떠날 손님인데 이 시간에 들어오니 주인아주머니는 물론 잠자던 여행자들이 모두 놀란 눈치다. 조용히 양말만 벗고 푹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스페인보다 조금 쌀쌀한 파리의 날씨가 느껴진다. 그래도 푹신한 침대에서 자고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니 기운이 난다. 슬슬 걱정이 앞선다. 오늘부터는 캠핑을 시작할 계획이다. 사실 여비가 넉넉하지 않아 선택한 전략이다. 기차타고 이동하고 민박이나 호텔에서 자는 대신 렌터카를 빌렸다. 그리고 텐트와 버너, 코펠을 구입해서 식과 주를 해결할 계획이다. 이렇게 하면 계획보다 더 많이 돌아다닐 수 있다.

민박 주인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 먼저 내비게이션을 구입했다. 렌터카 회사에선 하루 1만원쯤 대여료를 받는다더니 전자제품 매장에선 15만원이면 하나 구입할 수 있다. 일주일 이상 여행한다면 구입하는 것도 좋아 보인다. 두고두고 써먹을 생각으로 일단 챙겼다. 앞 유리에 붙이니 든든하다.

오늘은 파리를 떠나 독일로 방향을 잡았다. 동쪽으로 이동이다.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에는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의 현장도 있다하니 들러볼 생각이다.

일단 캠핑 준비부터 시작했다. 파리 시내를 벗어나니 넓은 주차장을 가진 아웃도어 용품 판매점 ‘DECATHLON’이 보인다. 이번 여행 초기에 등산화를 사려고 들렀던 매장이다. 유럽 곳곳에 있고 제품 가격이 저렴해 여행자가 급하게 물건을 찾기엔 좋다.

아웃도어 용품점에 들어가 캠핑에 필요한 것을 담았다. 일단 텐트는 이른바 ‘3초 텐트’라고 부르는 제품. 2인용이지만 성인 남성 혼자 누우면 거의 가득 찬다. 둥글게 접어지지만 휴대성은 좋지 않다. 차 트렁크에 넣으면 그만이고 가격도 5만원 정도로 저렴해 선택했다.

북쪽으로 올라오니 8월에도 쌀쌀하다. 밤잠을 편하게 자기 위해 침낭도 구입했다. 부피는 크지만 바닥에 에어매트 기능도 포함됐고 베개도 들어있다. 가격도 2만원 정도로 저렴하다. 사실 이번 캠핑 장비 구입 예산은 넉넉지 않다. 10만원 전후에서 모든 걸 해결할 생각이다. 숙박비 줄이려고 하는 캠핑이니 호사는 기대하지 않았다. 텐트와 침낭을 구입했는데 예산의 7할을 썼다.

잠뿐만 아니라 먹는 것도 해결해야하니 코펠과 버너도 구입해야한다. 유럽에서 관광지 식당 물가와 주거지 마트 물가는 천지차이다. 식당에서 샌드위치 먹는 돈이면 마트에서 소고기 등심을 푸짐하게 먹는다. 가스버너와 코펠 역시 저렴한 것으로 골랐고 숟가락과 포크 세트도 있기에 과감하게 장바구니에 담았다.

예산을 초과했다. 버너는 어차피 한국으로 돌아갈 때 비행기에 갖고 탈 수 없는 품목이므로 저렴한걸 골랐는데도 비싸다. 계산대로 나오는데 컵홀더까지 있는 캠핑 의자가 1만원이다. 캠핑의 품격을 바닥에서 끌어올려줄 품목이다. 아낌없이 지름 신을 영접하고 트렁크에 캠핑 장비를 실었다. 내비게이션부터 텐트까지 큰 지출을 했지만 앞으로의 여행에 식사와 잠자리를 구했다는 생각에 뿌듯하다.

파리를 벗어나 국도로 달렸다. 시트로앵 C3 피카소는 5단 수동변속기에 디젤 엔진을 얹은 차다. 정차시에는 엔진도 꺼진다. 고속주행보다 연비를 생각한 차인만큼 80km/h 정속주행을 할 생각이다. 연료도 아끼고 풍경도 구경하자는 전략이다.

아침 일찍 출발했지만 여러 물건을 구입하느라 많이 지체됐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까지 갈 계획인데 만만치 않은 거리다. 어림잡아 600km니 서울에서 부산보다 좀 더 멀다. 국도로 구불구불 달려야하니 시간은 더 걸릴 듯. 9시간쯤 예상을 하고 저녁에 독일에 도착하면 캠핑장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점심식사는 맥도날드다. 간단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데다 무선인터넷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여행자에겐 엄청난 혜택이다. 국도에 큰 간판으로 ‘전방 **km에 맥도날드가 있습니다’라고 알려주니 찾기도 쉽다. 국도를 달리니 엄청난 새떼를 마주치기도 했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새’가 이래서 나왔나 싶은 상상을 하며 달린다.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지역 ‘스트라스부르’에 도착했다. 알퐁스 도데의 흔적이라도 찾으려 했지만 시간이 많지 않다. 최근에는 TV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에 나와서 인기를 끄는 관광지다. 잠잘 자리 목표를 독일로 정했으니 어쨌건 달려야한다. 가장 높은 성당에 올랐다가 30분 정도 시내를 걸어 다니고 다시 독일로 향했다.

언제 독일에 들어섰는지도 모르게 도로 표지판이 바뀌었다. 아마도 프랑스를 지나면서 고속도로에 들어섰는데 아우토반의 시작인 듯하다. 내비게이션의 안내만 따라가니 길눈이 어두워진다. 국도에서 아우토반에 올라오니 주변 차들의 속도가 달라졌다. 폭스바겐 골프를 탄 할머니도 엄청난 속도로 질주한다. 3차로 도로에서 1차로는 잘 달리는 차들의 몫이다. 2차로에서 눈치껏 달리며 구경을 시작한다. 3차로에는 캠핑 트레일러를 끌고 가거나 말을 싣고가거나 엄청나게 큰 트레일러를 붙인 화물차가 달린다. 영국서 시작했다는 여행상품이자 여행사 ‘콘티키’의 버스도 보인다. 소형 디젤차로 시속 170km를 넘나들며 달리니 피로가 빨리 찾아온다. 그래도 엄청난 속도로 달린 덕택인지 해가 늦게 지는 덕분인지 어둠이 오기 전에 프랑크푸르트 인근 캠핑장에 도착했다.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독일 여행을 시작할 계획이므로 이곳을 목적지로 잡았고 오는 길에 맥도날드에서 캠핑장을 검색해 찾아왔다. 영어 안내가 없는 캠핑장은 내비게이션의 메뉴에서 캠핑장을 찾아 검색했다.

인근 캠핑장 아무 곳이나 선택해 왔는데 때마침 자리가 있다. 사실 자리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넓은 잔디밭에 텐트로 캠핑하려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혼자서 작은 차로 여행하거나 자전거에 텐트를 싣고 달리는 경우만 이용한다. 캠핑장의 대부분은 캠핑 트레일러가 차지한다. 캠핑장 주인아주머니는 “아무 곳에나 자리 잡고 사용하면 된다”고 말했지만 거대한 캠핑 트레일러 근처에 가기는 망설여진다.

텐트치기에 앞서 캠핑장을 둘러봤다. 샤워장, 화장실, 개수대가 있는 건물 뒤로 독일 경제의 젖줄이라는 마인강이 흐른다. 캠핑장과 강 사이에는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을 위한 도로가 있다.

역시 캠핑 트레일러는 화려하다. 집채만 한 차에는 없는 게 없다. 바비큐 그릴을 꺼내놓고 테이블을 펴서 각종 음식을 준비한다. 알록달록 테이블보를 깔아 운치를 더했다. 부러운 눈길로 엿보다가 다시 돌아와 텐트 설치를 시작했다. 별다른 요령도 기술도 필요 없다. 3초 텐트는 그저 던지면 90%가 끝난다. 촥 펼쳐지는 텐트를 위, 아래, 앞, 뒤 방향만 구분해서 잔디 위에 올렸다. 열 개쯤 되는 팩을 땅에 박으면 끝이다. 팽팽하게 연결하니 텐트의 모양이 갖춰졌다. 내부에는 자동으로 공기가 충전되면서도 저렴했던 침낭을 넣어놨다. 책과 작은 랜턴과 물과 맥주를 텐트로 옮기니 아늑하다.

프랑스 파리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까지 하루 만에 달려오다 보니 마트에 들러 식료품을 구입한다는 걸 깜빡했다. 음료수 몇 병이 전부다. 다시 차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저녁꺼리와 내일 아침, 그리고 두고두고 사용할 식재료를 구입했다. 독일에 왔으니 적당히 맛있어 보이는 소시지를 구입했고 맥주마신 속을 풀으려고 물을 부어 끓여먹는 스프도 준비했다.

마트에 다녀오니 동지가 늘었다. 건너편에 파란 텐트는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는 모양이다. 서로 가까운 곳은 싫었는지, 삼각형을 그려 가장 먼 곳에 또 다른 텐트가 들어섰다. 젊은 남성인데 아마도 여행하는 중인가보다. 이미 어두워진 캠핑장에서는 그다지 할 일이 없다. 한국에서처럼 화로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불을 피운다고 딱히 무언가를 구워먹기도 애매하다. 빵과 소시지로 간단히 저녁을 끝내고 랜턴 불빛 아래서 책을 읽었다. 그리고 마치 수면내시경하듯 스르륵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차가운 공기가 느껴진다. 강가라서 그런 지 안개가 가득하다. 머리카락은 푸석푸석하고 사방으로 삐쳐올랐지만 일단 식사를 하기로 했다. 버너 박스를 열고 코펠도 상표를 떼어냈다. 이제 시작이다. 소시지를 굽고 스프를 끓였다. 빵을 찍어먹으면 딱이다. 찬 바닥에서 잤지만 에어매트가 보온역할을 해줬고 뜨끈한 스프를 마시니 기운이 난다. 아껴뒀던 한국 커피믹스를 타 마시며 낭만적인 아침을 맞이했다.

여행자이니 이제 출동준비를 해야 한다. 캠핑장 시설을 어제 대강 봐뒀다. 아침 먹은 식기들은 개수대에서 씻었다. 캠핑장 사용자만 물을 쓸 수 있도록 화장실 키를 주는데 외부의 개수대는 수도꼭지가 잠금장치다. 열쇠고리가 있어야 딱 맞춰 물을 틀거나 잠글 수 있다. 화장실 겸 샤워실로 들어가니 1, 2, 3 숫자가 쓰여 있는 돈먹는 기계가 있다. 자판기처럼 생긴 기계의 정체는 샤워기다. 1번에 동전을 넣고 1번 샤워부스에 들어가면 물이 나온다. 우리나라 셀프세차와 시스템이 똑같다. 시간에 쫓기는 마음도 똑같다. 행여 머리감는데 물이 끊어질까 엄청난 손놀림으로 샤워를 마쳤다. 너무 빨리 움직였을까. 시간이 남는다. 속옷과 얇은 옷가지를 빨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이곳저곳으로 이동하는 떠돌이 캠핑 여행이 시작됐다. 혼자 움직이니 5인승 차는 빨래 건조대로 변했다. 에어컨을 틀어도 창문을 열고 바람불게 두는 게 더 잘 마른다. 우리나라에서 주말여행을 목적으로 했던 캠핑과는 전혀 다르다. 장비를 모두 구입하는데 13만원쯤 들었다. 렌터카를 이용했고 캠핑장은 하루에 1만원 정도의 요금을 받았다. 샤워장을 이용하는데 약간의 동전이 필요했고 마트에서 사온 식재료는 가격대비 든든한 식사를 책임졌다. 기차와 버스 시간에 맞추며 민박과 호텔을 전전했던 대학시절 배낭여행이 생각났다. 아는 만큼 즐긴다고했던가. 캠핑으로 유럽여행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이다일 기자 auto@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