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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러버덕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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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0-19 21:43:07 수정 : 2014-10-19 22: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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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전 오리인형 해양참사가 터졌다. 1992년 홍콩에서 미국으로 향하던 화물선이 북태평양에서 폭풍우를 만나 침몰한 것이다. 화물선에는 중국에서 고무로 만든 노란색 오리인형 ‘러버덕’ 2만9000개가 실려 있었다. 서양 어린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을 꿈에 부푼 오리들은 졸지에 ‘태평양 오리알’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오리 이야기는 여기가 끝이 아니다. 그들은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오리인형들은 세계여행에 나섰다. 해류를 타고 몇 년이 지나 하와이, 인도네시아, 호주, 남아메리카 해변에 도착했다. 심지어 북극해를 가로지르는 죽음의 모험도 마다하지 않았다. 몇몇 동료들이 거대한 얼음덩이에 갇히는 참변을 당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그들 중 수천 마리는 21년간의 긴 항해 끝에 지난해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해안에 닿았다. 유럽 사람들은 열광했다. 북극해와 대서양을 건넌 ‘오리 영웅’들은 예전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몸값이 치솟았다. 해양학자들에게는 조류의 흐름을 알려주는 소중한 자료를 선사했다. 더 많은 지구촌 사람들에겐 꿈과 희망을 선물했다. 비극을 희극으로 바꾼 러버덕의 위대한 도전이었다.

오리인형 러버덕이 서울에 둥지를 틀었다는 소식이다. 지난주 높이 16.5m, 무게 1t의 초대형 오리인형이 석촌호수에 등장한 것이다. 네덜란드 설치예술가 플로렌테인 호프만이 ‘희망 전도사’ 오리인형의 모험을 기리기 위해 2007년 제작한 고무 인형이다. 러버덕은 그동안 홍콩 등 세계 14개 도시에서 순회 전시돼 인기를 독차지했다. 이번 서울 전시에서도 엿새 동안 30만명의 구경꾼이 몰렸다고 한다.

희망! 사람들이 한낱 고무인형에 열광하는 까닭은 그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은 희망이 없는 사람이다. 희망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재산을 가졌더라도 그의 영혼은 가난하다. 우리 삶에 있어서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바로 희망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 상자는 뚜껑이 열리는 순간 모든 것이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상자 안에 꿈틀거리는 작은 하나가 있었다. 희망이었다. 그렇다. 판도라 상자에는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 우리에겐 내일의 태양이 있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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