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홀로 잠실구장을 찾았다. 예매를 취소하려다가, 올시즌에 작별을 고하는 나만의 의식이라고 생각했다. 포기하면 마음은 편해진다. 지하철 안에서 들여다본 스마트폰에는 새로 선임된 양상문 감독의 취임식 기사가 쏟아졌다. 솔직히 큰 기대는 갖지 않았다. 시즌 도중 감독이 바뀌어 팀이 잘된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그날, 5-0 영봉승이라는 과분한 선물을 안아들고 후련한 마음으로 야구장을 떠났다.
이후 5개월여가 지났다. 막판 부진으로 5할 승률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끝내 가을야구 티켓을 손에 쥐었다. 시즌 초를 떠올려보면 기적 같은 일이다. 감독과 코칭스태프 일부가 바뀌었지만 새로운 전력 보강은 없었기 때문이다. 팀 타율은 여전히 최하위권이고, 외국인 타자가 교체되면서 덩달아 내야 수비진까지 후폭풍을 맞았다. 그런데 위에 있던 5개 팀을 끌어내리고 4위를 꿰찼으니 기적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다.
유태영 국제부 기자 |
서두르지 않고 원칙을 지키며 뚜벅뚜벅 나아가는 것. 그것만큼 어렵고 독한 게 없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누군가의 눈에 야구는 ‘그깟 공놀이’에 불과하겠지만, 내가 30년째 보아 온 야구는 매 시즌, 매 경기가 인생의 축소판이다. 2014년 프로야구에서는 순위, 승차, 승률이라는 숫자에 위축되지 않고 자기 길만 뚜벅뚜벅 걷는 ‘꾸준함의 미학’을 봤다. 남에게 뒤처질까봐 늘 조바심을 내고 하루아침의 ‘대박’을 꿈꾸기도 하는 우리네 삶에 던져 준 의미 있는 화두다.
유태영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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