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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열풍?… 인문대 졸업생엔 ‘냉풍’

입력 : 2014-10-17 19:43:40 수정 : 2014-10-17 23:3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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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 소양 중시한다면서도 정작 인문학도는 원서도 안받아
금융권 마저도 이공계 우대 양상…“정책 의식한 겉치레” 비난 목소리
‘개화기 조선을 침략한 국가를 순서대로 나열한 것을 고르시오.’

지난 12일 실시된 삼성그룹의 하반기 대졸자 공채 인·적성검사(SSAT)에 출제된 문제다. 인문학적 역량을 갖춘 인재 선발을 강조하는 최근 기업들의 경향을 반영한 질문이다. 하지만 인문학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삼성디스플레이와 삼성테크윈 등 삼성그룹 6개 계열사는 아예 인문계 출신을 뽑지 않고 있다.

사학을 전공하는 취업준비생 박모(25·여)씨는 “인문학 소양을 높이 평가하겠다고 해서 기대했지만 실제 전형에서는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것 같다”며 “전형적인 기업의 보여주기식 채용 행태”라고 말했다.

최근 기업들이 역사·한자 등 인문학적 소양을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삼고, 취업 관문 중 하나인 인·적성 검사에 이를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4년간 인문학을 전공한 대학 인문계 졸업생들은 입사 지원 서류조차 낼 수 없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어 ‘인문학 홀대’ 현상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대기업 등에 따르면 삼성, SK, LG, GS, 포스코, CJ, 신세계, 롯데, 국민은행 등 대부분 10대 그룹이 올 하반기 신입직원 공채에서 역사 등 인문학 문제를 출제한다.

하지만 이공계 졸업생을 선호하는 현상은 올해 더 뚜렷해졌다. LG화학, LG디스플레이, GS건설, (주)두산 두산인프라코어, 두산건설 등은 올해 하반기 공채에서 역사학이나 국문학은 물론 경제학 등을 포함한 인문계 졸업생을 아예 뽑지 않기로 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올해부터 인문계열 학생들은 신입사원 공채 대상에서 제외하고 상시 채용으로 전환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인문계생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던 금융권마저도 이공계생들을 우대하는 분위기다. 국민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은 하반기 채용 공고에서 ‘이공계·통신·정보기술(IT) 관련 전공자 우대’를 명시하고 있다.

같은 인문계 내에서도 역사학, 철학 등을 전공한 ‘순수 인문학도’들은 취업 관문을 뚫기가 더 어렵다. 대한항공의 경우 일반관리직무 분야에서 상경, 법정, 외국어 등의 전공자를 채용하지만 국문학, 역사, 철학 등 순수 인문 전공자들은 채용대상에서 빠졌다.

취업준비생 김모(25·여)씨는 “기업에서 인문학도에게 기회를 준다고 했지만 정작 채용공고를 보면 이공·상경 계열을 선호하고 있다”며 “복수전공을 하지 않고 국문과를 심화 전공한 나 같은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인문학을 강화한다는 대기업들의 인재 채용 정책이 정부의 인문학 진흥 정책을 의식한 ‘겉치레’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취업준비생 박모(23·여)씨는 “한 유통업체에서 인문학 소양을 평가한다며 논술 시험을 치렀는데 ‘기업형 슈퍼마켓(SSM)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문제가 나왔다”며 “이런 문제들로 인문학 소양을 평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단국대 신은종 교수(경영학)는 “인문학 열풍에 맞춰 최근 기업들이 채용 정책을 변화시키고 있지만 인문학에 대한 의미를 아주 좁게만 정의하고 있는 것 같다”며 “본질을 변화시키지 않는 인문학 강조가 계속된다면 창의적 기업으로 발전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권이선·염유섭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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