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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호칼럼] 노벨상 바란다면 학문정책부터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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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0-12 21:43:26 수정 : 2014-10-12 21:5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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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적 평가 방식 질적 평가로 전환을
자유로운 연구 풍토·대학 협력 중요
몇 해 전부터인가 국민들은 노벨상 수상 발표가 있을 때마다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기다린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화상 수상 이후 다른 분야의 노벨상을 바라는 심리도 생겼고,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추어 이제 과학 분야 노벨상도 수상할 만하다는 기대도 있을 법하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올해도 이웃 일본의 물리학상 수상을 부러워하는 처지가 됐다. 전문가들 진단은 대체로 암울하다. 기초과학 연구의 역사가 일천하고 연구 환경도 열악해 앞으로도 상당기간 과학 분야의 노벨상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다.

노벨상 수상을 바란다면 무엇보다 국가의 학문 정책을 바꾸어야 한다. 노벨상을 받을 만한 연구는 국가나 사회의 필요보다는 연구자의 진리 탐구욕에서 촉발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국가는 자유롭게 연구하는 풍토 조성에 힘써야 하고 학문에 대한 간섭을 자제해야 한다. 그것이 학문의 자유, 대학의 자치를 보장하고 있는 헌법정신이다.

그러나 우리 고등교육법은 교육부 장관이 학문의 전당인 대학을 감독할 뿐 아니라 ‘지도’하도록 규정함으로써 헌법정신을 훼손하고 있다. 헌법은 초·중·고 교육까지 포함해 교육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는데, 대학조차도 국가의 지도를 받는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며 반문명적이다. 일찍이 독일 베를린 대학의 기초자인 훔볼트가 ‘대학은 외부세력, 특히 국가의 부당한 간섭에서 자유로워야만 진리 탐구를 통한 인류에의 봉사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한 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교육부 장관의 ‘지도’를 삭제해야 하는 이유다. 국가에서 대학을 지도하면서 창의적인 연구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다.

현재 교육부는 학령인구 감소를 이유로 대대적인 대학구조조정을 계획하고 있다. 방만한 대학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대학구조조정을 주도하면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정부는 기초학문 보호 등 가이드라인만 제시하고 대학 스스로 생존을 위해 구조개혁에 나서도록 유도하는 편이 낫다. 어차피 경쟁력 없는 대학은 시장원리에 의해 도태될 것이기 때문이다.

노벨상 수상을 원한다면 학문에 대한 양적 평가 방식에서 질적 평가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학문을 논문 수로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최근 한국연구재단이 ‘기초연구진흥 계획’에서 질적 연구성과 중심으로 목표를 전환했다지만 여전히 양적 평가 위주이다. 양적 평가가 갖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학술지의 영향력 지수를 이용한다고 하나 이것도 도서관 사서들의 편의를 위해 고안된 것으로 한계가 있다. 궁극적으로는 학계의 자체 평가에 맡겨야 한다. 또 기초과학보다는 응용 내지 실용과학 위주로 하는 자원 배분을 시정해야 한다.

정병호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
흔히 노벨상을 받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고 한다. 한정된 재원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말이다. 그러나 국가가 특정 학문 분야를 전략적으로 키운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각 학문 분야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서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에 국가는 기초과학 전 분야가 균형 있게 발전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래야 요즘 강조되는 학문융합도 가능하다. 대학별 특성화를 해야 하지만 이것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학 간 협력이 필수적이다. 40개가 넘는 국공립대부터 협력 방안을 고민할 때다.

학생들의 이공계 기피현상을 치유하지 않는 한 노벨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단기적인 성과에 급급해 원천기술 개발을 등한히 해서는 안 되며, 다른 한편 대학 등 연구기관 종사자에게 과학기술 효용주기의 감소에 대한 안전망을 구축해 연구 생태계, 학문공동체를 복원해야 한다. 대학은 필수요, 대학원은 선택이라는 이분법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이공계 대학원생들은 학문을 연마하는 학생이기도 하면서 연구, 실험을 보조하는 인력이기도 하다. 선진국에서 그러하듯 우수한 대학원생에게는 생활비 걱정 없이 연구에 몰두하도록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정병호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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