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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칼럼] 매팅리는 1차전서 뭘 배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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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0-09 20:44:24 수정 : 2014-10-09 20:4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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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비극, 4차 희극’ 못 피한 다저스 감독
‘복지 디폴트’ 한국도 악몽의 7회 경계해야
또 악몽의 7회였다. 그제 LA다저스의 2-3 역전패를 지켜보다 혈압이 치솟았다. 나중엔 쓴웃음, 헛웃음까지 삼켰다. 마르크스의 경구도 곱씹었다.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처음엔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라는.

이승현 논설실장
LA다저스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2014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 4차전 6회까지, 다저스의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는 상대 타선을 압도했다. 돌연 망가진 건 다 알다시피 7회의 일이다. 앞서 4일의 1차전도 비슷했다. 커쇼는 7회에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미리 상상하기 힘든 결과였다.

그런데, 왜 ‘비극, 희극’ 타령인가. 1·4차전이 같으면서도 다르기 때문이다. 참담한 역전패요, 그 중심에 커쇼가 서 있었다는 점은 같다. 하지만 다저스 감독 돈 매팅리가 4차전에선 늦기 전에 투수 교체의 결단을 내려야 했다는 결과론 측면에서 본다면 절대 같지 않다. 거칠게 요약하면 1차전은 비극이요, 4차전은 희극이다.

마르크스의 경구는 원래 스포츠와 무관하다. 정치 3부작의 하나인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나왔다. 1848년 보통선거를 통해 프랑스 대통령이 된 루이 보나파르트(나폴레옹 3세)가 어찌 삼촌 나폴레옹을 흉내 내 독재자로 변신하는지를 계급투쟁 관점에서 분석한 역작이다. 마르크스는 거기서 ‘역사는 반복된다’는 헤겔의 경구를 비틀었다. 왜 ‘두 번째는 희극’인가. 영웅주의 상징인 나폴레옹 탈을 쓴 루이 보나파르트가 마르크스에겐 그저 조소와 매도의 대상이었던 까닭이다.

야구 시청은 중독성이 있다. 정치적 함의가 담긴 경구조차 야구에 적용하게 된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치에도 경구가 유효한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에 이어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가 ‘복지 디폴트’ 선언을 예고해 뒤숭숭한 마당이니 더욱 그렇다.

한국 사회는 ‘보편적 무상복지’ 1라운드에 이어 2라운드를 맞고 있다. 정치권엔 1라운드 때 재미 본 이들이 널려 있다. 여야 공히 사탕발림 공약으로 표깨나 모으지 않았던가. 하지만 국가 재정, 국민 세금이 어찌 되는지는 다들 등한시했다. 유권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문제의식을 모을 기회였던 오세훈 주민투표는 일축됐다. 비극이었다.

이제 2라운드다. 복지 청구서가 속속 날아드는 국면이다. 비극의 구체화, 희극화 단계다. 현재도 난장판인데, 미래는 더 캄캄하다. 여간 답답하지 않다. 하나 자명한 건 무상복지 규모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든 아니면 조세 저항과 경제 손상을 감수하며 재정 규모를 키우든, 결단을 내릴 시기가 임박하고 있다는 점이다. 눈을 크게 뜨고 조심할 일이다. 자칫 포퓰리즘 재앙을 구조화하게 된다. ‘한강의 기적’을 기억하는 이방인의 눈에는 그런 희극이, 그런 반면교사가 달리 없게 된다.

다저스로 돌아가자. 1차전은 자연재해에 가까운 역전극이다. 매팅리의 ‘커쇼 사수’ 선택을 탓하긴 어렵다. 중간계투진이 두루 미덥지 못한 터에 에이스를 내리는 건 겁나는 도박이다. 커쇼가 역전 2루타를 맞은 건 병가지상사로 간주해도 무방했다. 간추리면, 1차전 패전은 의외성이 크게 작용하는 단기전의 비극이었을 뿐이다.

4차전은 판이하게 다르다. 매팅리가 또 7회에 뭇매를 맞는 커쇼를 방치한 건 무책임·무소신의 극치다. 변호 또한 어렵다. 1차전에서 뭘 배웠는가. 매팅리는 리더가 아니었다. 에이스 뒤에 숨었을 따름이다. 경제학에서 경계하는 ‘대리인 문제’까지 떠올리게 했다. 이건 비극일 수 없다. 차라리 희극이라 해야 옳다.

4차전은 비극보다 못한 희극이란 점에 그 진정한 비극성이 있다. 하지만 매팅리는 걱정할 게 없다. 한 해 농사를 망쳤지만 내년에 잘하면 될 일이다. 야구 한 번 망쳤다고 세상이 전복되지도 않는다. 정작 큰 문제는 한국 사회가 안고 있다. 무상복지는 국운과 민생을 송두리째 결딴낼 만큼 비중이 무겁다. 비극보다 못한 희극을 어찌 피할 것인가. 속히 답을 구하고, 행동해야 한다. 여야의 공동 책임이다. 이제 밑천 없이 생색만 내는 복지 전도사가 아니라 해결사 노릇을 해야 한다. 악몽의 7회가 해일처럼 밀려들기 전에 말이다.

이승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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