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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철칼럼] 대통령이 세월호 유가족 만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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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0-02 20:54:45 수정 : 2014-10-02 20:5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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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치는 증오와 광기… 분열로 나라 동강 날 판
가슴으로 위로하고 진상규명 협조 약속해 통합 출발점 삼아야
2011년 7월22일 노르웨이에서 청소년 77명이 한순간 꽃처럼 졌다.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14∼19세 아이들이었다. 경찰관 복장을 한 채 소총을 난사한 안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는 극우주의자였다. 기독교인이기도 했다. 집단살인극을 벌인 이유는 너무 어이가 없다. 좌파들이 꼴 보기 싫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아이들은 노동당이 주관하는 청소년캠프에 참가하고 있었다. 이 악마는 정신병자가 아니다. 노르웨이 법정은 그에게 법정 최고형인 21년형을 선고했다.

백영철 논설위원
참극을 노르웨이는 어떻게 극복했는가. 분노 대신 포용이었다. 당시 옌스 스톨텐베르그 총리는 추모식에서 “우리는 더 많은 민주주의와 더 많은 개방성, 더 많은 인간애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위기 시 지도자의 정치철학이 빛난다. 국난의 순간에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피해자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치유하면서 국민적 분노의 불길을 단합의 에너지로 모으는 것이다. 노르웨이의 여야가 참극의 해법을 두고 갈라져 싸운 얘기는 듣지 못했다. 국민이 좌우로 나뉘어 삿대질하지도 않았다. 국가는 분열되지 않았다. 성숙한 사회적 문화, 이웃에 대해 배려하는 관습, 인간에 대한 애정 등도 작용했을 것이다. 캠프에서 살아남은 소녀는 인터뷰에서 말했다. “한 사람의 증오를 녹여 내려면 여러 사람의 사랑을 모아야 해요.” 사회 전체가 내공이 깊지 않으면 어린 소녀에게서 이런 말이 나올 수 없다.

노르웨이 참극을 일으킨 브레이비크는 한국을 본받을 나라로 거론했다. 단일민족이라는 게 이유다. 참 황당하다. 이 얼빠진 극우주의자의 찬사를 듣는 것도 거북하지만 한국이 얼마나 분열된 나라인가를 잘 알기에 더욱 그렇다. 우리에게 분열은 일상화돼 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고질적이다. 미국, 일본 등 잘사는 나라 대부분이 당파적 분열로 신음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도 중증이다. 극단적 당파주의의 폐해로 국가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래도 미국은 안보 등에서 국가적 위기를 맞으면 대통령 중심으로 단합한다. 의회도 한목소리를 낸다. 지지도가 바닥을 치던 부시 전 대통령도, 오바마 현 대통령도 랠리이펙트(rally effect)의 수혜자다. 한국은 그렇지 않다. 천안함 폭침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도는 더 떨어졌다. 한국과 선진국은 이처럼 뭔가 결정적인 다른 점이 있다.

인터내셔널 뉴욕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세월호 참사가 한국을 분열시키고 있다.” 외신 보도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눈으로 봐서 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는 갈가리 찢어지고 있다. 증오심에 광기가 더해지면서 분열은 악성종양처럼 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나자 좌파 사람들은 시위현장에서 공공연히 “정말 쓰레기 같은 정부”라고 했다. “더 이상 박근혜를 대통령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극악한 표현에서 번득거리는 적의를 느낀다. 다른 사람도 아닌 변호사나 교육단체의 간부가 그랬다. 우파도 오십보백보다. 유가족들이 단식투쟁에 들어가자 ‘폭식투쟁’을 벌였다. 여기서 눈곱만치의 시민의식도 발견할 수 없다.

생각이 다르면 무조건 “꼴 보기 싫어!” 하며 싸움질부터 하는 나라가 됐다. 위험신호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가다간 노르웨이의 브레이비크 같은 이념의 탈을 쓴 악마가 탄생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세월호 참사도 그렇게 났다. 문제를 알면서도 방치하는 사이 비극은 잉태된다. 여야가 놀고먹는 것이 문제의 다가 아니다. 더 심각한 것은 국가의 분열이 걷잡을 수 없는 수위로 진입하고 있는 현실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불치의 병이 되고 있는 국가적 분열 위기를 이대로 놔둘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 여야 지도부가 함께 나서야 한다. 대통령은 유족들을 조속히 만나 철저한 진상규명을 약속할 필요가 있다. 상처 받은 국민과 눈물을 섞으며 위로하는 데서 위기 극복의 출발점은 확보된다. 여야 지도부도 파당적 싸움을 당장 멈춰야 한다. 브레이비크 같은 이념에 사로잡힌 극단적 범죄자가 출몰해야 정신을 차릴 텐가.

백영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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