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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을 지닌 생명… ‘타자’가 채워줘

입력 : 2014-10-02 21:26:51 수정 : 2014-10-02 21:2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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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선의 한 주의 시] 생명은

요시노 히로시(吉野弘)

생명은
자기 자신만으로 완결될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 같다
꽃도
암술과 수술이 갖추어져 있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고
버러지나 바람이 찾아와
암술이나 수술을 중매한다
생명은
그 안에 결핍을 지니고
그것을 타자他者에게서 채워 받는다

세계는 아마도
타자와 총화總和,
그러나
서로가
결핍을 채운다고는
알지도 못하고
알려지지도 않고
산재散在해 있는 것들끼리가
무관심하게 있을 수 있는 관계,
때로는 꺼림칙하게 여기는 것도 허용되는 사이,
그렇듯
세계가 느슨하게 구성되어 있는 것은 왜일까?

꽃이 피어 있다.
바로 가까이까지
등에의 모습을 한 타자가
빛을 두르고 날아와 있다
나도 어느 때 누구를 위해서 등에였겠지
당신도 어느 때
나를 위한 바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제석천의 궁전에는 오색찬란한 구슬로 된 그물이 있다. 그물코마다 붙어있는 구슬에는 다른 그물코에 붙어있는 모든 구슬들이 비치고 있다. 제각기의 아름다운 빛이 제각기의 구슬에 들어가 비치고 이들 모든 영상에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신의 모습도 비친다. 하나가 흔들리면 모두가 흔들린다. 서로가 서로의 속에 들어가는 상입(相入)이요, 서로가 남남이 아닌 하나라는 상즉(相卽)을 이루어 찬란한 다중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것이 우리들 사는 세상의 참된 모습이라 한다. 

그림=화가 박종성
‘화엄경’에서 만물이 존재하는 방식에 대해 설명하는 인드라그물 이야기이다. 이는 모든 개체가 상호작용을 통해 의존관계에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시인도 노래한다. ‘생명은/ 자기 자신만으로 완결될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 같다’고. 트리나 포올러스도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나비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꽃들에게 희망을 주어 암술과 수술이 결합하여 새 열매를 잉태하게 됨을 애벌레의이야기를 통해 보여준다.

나도 어느 때 누구를 위해서 ‘빛을 두른 등에’였고 ‘바람’이었다. 누구인지 모르는 그대도 나를 꽃피게 하는 빛이었고 바람이었고, 또 앞으로도 그러할 것임을 믿는다.

이혜선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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