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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영화이야기] 나운규의 '아리랑'은 왜 본 사람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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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9-27 08:49:00 수정 : 2014-09-27 08: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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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리랑'(감독 나운규, 1926)/출처=한국영상자료원
“나운규의 ‘아리랑’을 본 적 있는 사람?”

가끔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질 때가 있다. 그러면 봤다고 하는 사람을 가끔 만나기도 한다. 물론 금세 착각이었음이 밝혀지지만 말이다.

만약 독자 중에 진짜로 ‘아리랑’(감독 나운규, 1926)을 본 분이 계시다면 바로 한국영상자료원에 연락하시기 바란다. 현재 필름이 남아있지 않은 영화이니 필름을 발굴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운규가 각본을 쓰고, 감독, 출연한 ‘아리랑’은 1926년 단성사에서 개봉된 후 약 2년 동안, 지방 흥행사가 자전거에 필름을 싣고 전국 순회 상영을 하며 전국적인 인기를 얻었던 영화다.

영화가 끝날 즈음 관객들이 ‘아리랑’을 부르며 울음바다를 이뤘다는 증언도 있고, 일본 등 해외에서도 상영됐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필름은 유실돼, 전설로만 남았다. 전편의 인기에 힘입어 ‘아리랑 후편’(감독 이구영, 1930), ‘아리랑 3편’(감독 나운규, 1936)도 제작됐으나 현재는 모두 필름이 남아있지 않다.

어떤 이들이 ‘아리랑’을 본 것으로 착각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아리랑’(감독 김소동, 1957), ‘아리랑’(감독 유현목, 1968) 등 여러 차례 리메이크됐기 때문이기도 하고, 김기덕 감독의 ‘아리랑’(2011)처럼 내용은 전혀 다른데 동일 제목의 영화들도 여럿 나왔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1999년 한 주간지에서 101명의 영화인들을 대상으로 '20세기를 빛낸 우리나라 최고의 영화'를 설문조사 했을 때, 1위 ‘오발탄’(감독 유현목, 1961)에 이어 ‘아리랑’은 2위를 차지했다. 1938년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제였던 제1회 조선일보 영화제에서 관객이 선정하는 무성영화부문 1위에 오른 지 60여 년이 흘러서도 여전히 ‘아리랑’이 잊혀 지지 않았다는 점이 놀라웠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사람들 중 과연 나운규의 ‘아리랑’을 본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심되었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는 영화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오랜 세월이 흘러서도 많은 이들이 기억할 만큼 인기가 높았던 영화 ‘아리랑’은 왜 필름이 남아있지 않은 걸까? 사실 필름 유실은 ‘아리랑’만의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상업영화 제작이 시작된 것은 1919년 ‘의리적 구토’(감독 김도산) 부터다. 본격적으로 장편영화가 제작된 1923년에는 ‘국경’(감독 1923), ‘월화의 맹서’(감독 윤백남), ‘춘향전’(감독 고천고주(일본인)) 등이 제작되었고, 이후 영화 제작은 지속되었지만, 남아 있는 필름들은 많지 않다.

일단 예전 필름들은 질산염 재질로 가연성이 좋아 쉽게 손상됐다. 초창기 영화관들의 화재 사건은 세계적으로 빈번했을 정도이니, 장기 보관용으로는 내구성이 나빴다. (이탈리아 영화 ‘시네마 천국’(감독 죠세페 토르나또레, 1988)에서 알프레도 할아버지는 극장 필름실의 화재로 실명했다.)

게다가 재활용 그러니까 개봉 이후 변두리 상영, 지방 상영에서도 개봉 필름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닳아 없어질 때까지 상영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는 값싼 오락거리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굳이 원본(네거티브)필름을 고이고이 보관해야한다는 마인드도 없었다.

혹시 누군가 소장을 했었다 해도, 전쟁도 겪어야 했고, 대를 이어 보존을 하는 것이 웬만한 정성이 아니면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현재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소장 중인 영화들 중 가장 오래된 한국 극영화는 ‘청춘의 십자로’(감독 안종화, 1934)로, 국내에서 개인 소장돼 온 것이 발견된 것인데 매우 이례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주로 중국 등 해외에서 발굴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세기 전후 유럽에서 만들어진 초창기 영화들 중 다수도 미국에서 발견된 필름들이었다. 미국으로 수출돼 상영된 필름들이 미술관 등에 남아있던 경우다.)

지난 9월 16일 또 한편의 옛 한국영화가 언론에 공개됐다. 1940년 영화 ‘수업료’(감독 최인규, 방한준)가 중국전영자료관에서 발굴되었는데, 다음 달엔 일반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사실 ‘발굴’이란 단어가 어색하기도 하다. 문화재처럼 영화도 발굴? 복원이라니? (‘청춘의 십자로’는 2012년에 문화재청 제488호 문화재로 등재되었다.)

영화는 영화 속 풍경. 인물들의 옷차림, 행동 등 영화 속 내용뿐만 아니라 영화가 만들어진 시대적 문화적 상황도 알 수 있게 해주는 문화 산물이다. 이번에 발굴 공개된 ‘수업료’와 같은 1940년대 영화들을 통해서는 당시 우리나라의 모습과 사람들의 생활뿐만 아니라, 당시 친일영화를 제작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도 확인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수천 년, 수백 년 전에 비해 수 십 년 전 우리의 모습에는 덜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게다가 다시 생각하기 괴로운 일제 강점기 산물들이 아닌가. 그것도 값 싸게 즐기는 오락거리였고.

‘아리랑’을 포함해 많은 영화들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어딘가 숨어있는 것이기를 바란다. 주변을 한번 살펴보시라. 또 아는가? 의외로 가까운 곳에 발굴돼 빛을 보기를 기다리는 영화들이 있을지.

영화뿐만 아니라 예전에 존재했었던 우리가 만든 것들, 즐겼던 것들이 가능한 많이 소중히 보관되고 대해졌으면 좋겠다. 현재의 것들도 마찬가지이고.

서일대 영화방송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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