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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윤의 내밀한 미술사] <8> 미스터 식스 이야기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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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9-25 21:35:31 수정 : 2014-12-01 12:5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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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얀 식스 개인소장 앨범 남겨… 지인들과 ‘예술적 공감’ 나누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그의 저서 ‘트러스트’에서 사회적 자본은 한 사회에 신뢰가 정착되었을 때 생긴다고 말했다. 구성원 간의 신뢰는 개인 나름의 도덕관을 앞세워 행동한다고 해서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윤리적 관습을 토대로 한 사회적 덕목에 기초하고, 집단이 먼저 공동 규범 전체를 수용해야만 구성원 간의 신뢰가 구축되는 것이다. 역동적인 작품을 남긴 렘브란트와 그의 후원자 얀 식스의 관계는 당시의 사회가 요구해던 이상적인 신뢰의 형태로 연결되어 있었다. 특히 그들의 활동 무대였던 암스테르담에서는 무역과 상업의 급격한 성장으로 사람과 자본 그리고 신지식이 집중적으로 몰리는 현상이 벌어졌다.

얀 스턴의 ‘식전의 기도’(1660년작, 개인 소장) 일상의 아침식사 정경을 담은 실내의 벽에는 “헛된 부를 탐하지 않고, 가장 현명한 기도를 드리며, 늘 정직함을 되새기겠다”는 농부 가족의 종교적 신조가 적혀있다.
그러나 성공한 상인들은 불어나는 재산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집단이 갖는 사회적 자본은 돈이 아니라 정신적인 끈으로 단결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정신이 지덕이 뛰어난 상인을 일컫는 ‘메르카토르 사피엔스(Mercator sapiens)’이다. 지식의 추구야말로 상인들의 정신을 고양해 이상적인 상도(商道)의 근간을 마련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암스테르담의 상인들이 구축한 신뢰의 수준은 다른 도시에 비해 훨씬 견고했고, 그 뿌리 또한 깊을 수밖에 없었다.

SNS와 같은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으로 한 개인이 사회생활을 통해 구축한 인맥의 그물망이 한눈에 보이는 세상이 되었다. 또한 올라오는 게시물을 보면 공유하는 관심사가 그룹에 따라 어떤 특색을 갖고 있는 지도 금세 파악이 된다. 17세기의 초대 얀 식스는 사적인 교류를 통해 얻어진 글과 그림을 모아 ‘판도라’라는 개인 소장용 앨범을 남겼는데, 마치 소셜네트워크의 원형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에라스무스의 격언집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 “Amicorum communia omnia(친구들은 모든 것을 공유한다)”을 연상케 할 만큼, 이 앨범은 예술적 공감을 통해 다져진 우정과 신의의 소통으로 가득하다. 얀 식스과 그의 친구들은 어떤 것들을 공유하려 했을까. 각 페이지에 담긴 짧은 글과 드로잉들을 보고 있으면 학문의 탐구와, 철학적인 통찰, 그리고 예술의 향유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상인 출신의 신지식인들이었다고 해도 학문에 대한 깊은 소양을 갖추기 위한 그들의 진지함은 구도자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고전을 비롯한 다양한 학문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던 얀 식스로부터 초상화와 문학작품에 부합하는 일러스트의 제작 의뢰를 받았던 렘브란트는 ‘지(知)’를 바탕으로 한 신뢰의 틀에서 서로가 추구하는 예술관을 공유했던 것이다. 

높은 수준의 신뢰도가 구축되지 않으면 결코 미술시장은 활성화될 수 없다는 지론을 가진 화상 얀 식스(오른쪽 )가 작품의 보존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대가들의 작품이 노후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보존과 수복은 고미술품 거래의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다.
우리 세대의 젊은 화상 얀 식스에게 ‘신뢰’라는 키워드는 어떤 다른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오늘날의 미술시장이 안고 있는 동서양의 분리 현상을 타파할 수 있는 최대 현안으로 신뢰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통찰이다. 중국의 큰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매머드급 아트페어 조직인 TEFAF와 경매회사 소더비는 베이징 진출에 그 어느 때보다 박차를 가해 온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작년 하반기에는 처음으로 렘브란트의 작품이 베이징의 옥션에 출품되었던 것이 기억에 새롭다. 그러나 당초에 쏟아졌던 열광적인 관심과 기대에는 크게 못 미치는 결과를 얻기도 했고, 향후의 예술품 투자에 대해서도 예측불허라는 신중한 태도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주시했던 얀 식스는 소더비에서의 경험 등을 돌이켜 봐도 르네상스나 바로크 시대에 제작된 대가의 작품을 산 동양인 컬렉터는 극히 드물 수밖에 없다고 인정했다. 유일하게 홍콩 출신의 사업가가 렘브란트의 작품을 산 적이 있지만, 그 컬렉터는 기본적으로 모든 교육을 영국에서 받았고, 서양미술사의 흐름을 상당 부분 이해하고 있어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특수한 경우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문제는 수요의 부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아직 뿌리조차 내리지 않은 중국 시장으로 몰려들어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작품을 옮겨 걸고, 중국계 컬렉터들을 새로운 타깃층으로 삼는 것이 시기상조일 뿐이다. “중국인 컬렉터들이 중국 관련 작품을 손에 넣기 위해 치열하게 보이는 입찰 경쟁은 거의 영화 다이하드식의 무모한 도전을 연상케 합니다.” 이러한 큰손들이 작품 소장에 욕심을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근세 시대의 서양 미술품에 투자하는 것을 주저하는 현상은 서로 다른 문화와 역사에 대한 신뢰가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서양 미술사에 대한 관심과 교육이 보편화된 일본처럼 중국 시장을 뜨겁게 달구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많은 전시회를 만들고, 다양한 시점에서 고찰한 미술 관련 서적들도 본격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이러한 지식, 신뢰, 정보와 같은 무형의 가치가 중시되는 풍조가 만들어져야만 바로크 시대의 회화를 즐기고 소장하고 싶어 하는 패러다임으로 바뀔 수 있다.

감당할 수 없는 작품에 전력투구하는 사치풍조에서 벗어나, 평생 곁에 두고 애착을 가지며 즐길 수 있는 작품을 찾아 나서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사실 컬렉터들은 작가와 그 시대에 대한 완벽한 지식을 갖고 작품을 소장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지요. 미스터리한 분위기에 매료되어 구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그림의 내용을 이해한 듯이 느껴지는 순간이 도래할 때가 있습니다. 매일매일 봐도 질리지 않고 신선함을 느끼게 하는 작품을 단 하나라도 인생에서 발견할 수 있다면 엄청난 행운입니다.” 

초대 얀 식스의 개인 소장 앨범 ‘판도라’에 등장하는 이미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최초의 여성 판도라의 이름은 ‘모든 것을 갖춘 존재’라는 의미에서 비롯되었다.
그가 소장고에서 일본 에도시대 말기에 활동한 니시야마 호엔의 화첩을 꺼내왔다. 이 작은 화첩에는 열두 달을 상징하는 꽃과 곤충들이 여백미를 중시한 화면 속에 그려져있다. 필촉도 그리 많이 더해지지 않은 정갈한 느낌의 화풍이 눈에 띄었다. “저는 이 화첩을 열고 시선을 고정하고는 무심히 명상하듯 쳐다보곤 합니다. 짧은 글의 시들을 봐도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없기에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지요. 재빠르고 망설임 없는 선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매번 새로운 경이로움에 감탄할 뿐입니다.” 예술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첨예한 지식과 검증된 눈이 필요하다는 부담에 쫓기는 경우가 많지만, 내심 느긋하고 색다른 감상법을 찾아보고 싶을 때가 있다. 의미를 몰라도 여전히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더없는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이 같은 종류의 소장품에 심취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사실 캔버스에는 거짓말이 너무 많아요. 틀려도 늘 수정이 가능하고, 밑칠을 한 뒤 윗겹으로 올라올며 붓칠을 무수히 반복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찰나의 순간에 그려내는 동양화의 화법은 서양의 이런 지루한 과정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그렇기에 아티스트가 작업을 하면서 사유하는 프로세스가 완전히 다르게 되는 겁니다." 작품 속에서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단 하나의 획을 긋기 위해서는 충분한 생각이 필요하게 되고, 그 생각하는 시간이 있기에 붓놀림을 한 찰나의 표현이 보는 이들에게는 영원처럼 다가올 수밖에 없다. 또한 한 순간에 완성될 완벽함을 익히기 위해 필요한 시간과 노력이 예술을 만든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반면에 네덜란드 미술의 진수를 맛보기 위해서는 신과 생명이 있는 모든 것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먼지나 꺼져가는 촛불, 썩어가는 꽃, 그리고 말라가는 잎과 같은 불완전한 것까지도 모두 신이 만든 창조물이라는 깨달음이 작품 속에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얀 스텐이 그린 ‘식전의 기도’야말로 네덜란드인들의 삶을 그대로 응축시킨 최고의 걸작품이라고 평가한다. 이 작품은 우리가 살아 있는 한 매일 똑같이 반복하는 일들, 예를 들면 아침에 일어나서 창문을 열고 실내 가득 햇살을 받아들이는 일, 일상생활에 쓰이는 평범한 가구나 가재도구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마음, 하얀 식탁보를 깔고 자신들이 직접 만든 빵과 치즈 그리고 햄을 차려놓은 정경이 고스란히 화폭에 담겨졌을 뿐이다. 그러나 순수한 일상의 연출 속에서 종교의 원초적인 형태로 절대 귀의하는 인간의 감정을 읽을 수 있다. “손때 묻은 의자의 손잡이와 팔걸이 부분에서는 오랜 시간 사용한 생활감이 그대로 느껴지지요. 꾸밈없이 소박한 아침의 작은 의식이 주는 고귀함과 숭고함은 우리들의 심금을 울립니다.”

헤겔은 네덜란드의 풍속화가 추구한 ‘세속적인 것의 장엄함’이 주는 공명에 대해 “그 자체에 고유한 미를 갖고 있지 않는 존재일지라도 예술의 힘을 빌려 품격을 높이는 일”이라고 칭송했고, 이것이야말로 예술가의 주관성이 가져다준 승리로 간주했다. 이렇게 중요한 작품을 찾아내고 소장하는 컬렉터야말로 진정한 안목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얀 식스는 컬렉터의 중요한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최근 뉴욕의 저명한 컬렉터 토머스 캐플런은 이 얀 스텐의 작품을 구입하였습니다. 그가 내린 힘든 결정은 후대에도 길이 남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눈과 마음을 충족시킴은 물론이고, 후세의 사람들에게 틀림없이 대단한 공헌을 하게 될 테니까요. 작품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사는가는 모든 성패를 좌우합니다.” 따지고 보면 렘브란트가 그린 초상화 한 점이 존재하기에 자신의 아이덴티티가 결정된 11대 얀 식스이기에 이같이 내다볼 수 있는지도 모른다.

아직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없었다는 얀 식스는 아름다운 영상미가 기억에 남는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배경이 된 청송의 주산지에 꼭 가보고 싶다고 했다. 불교적인 인생관과 삶을 둘러싼 시적 비유를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마치 만다라를 앞에 서서 인생의 각 단계를 한 바퀴 둘러보는 듯한 특별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예술품 수집에 관심을 갖는 층을 점차 젊고 새로운 새대로 넓히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하는 그는 “작품에 역사가 있다는 것만으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엄청난 자본이 필요할 거라는 추측만으로 처음부터 포기할 필요도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한국의 젊은 컬렉터들도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작품을 지적으로 향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그 작품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포부를 갖고 미술시장의 수요 변화를 예의 주시하며 공부할 것을 당부했다.

양정윤 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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