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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춘의세금이야기] 200만원짜리 사해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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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9-23 21:24:38 수정 : 2014-09-23 21:3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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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수가 부족해 세금을 더 높여야 한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보도되고 있다. 국민을 위해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는 논리다. 2010년 미국에서 납세자가 비행기를 몰고 국세청 건물로 돌진한 사건이 있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국세청과 정부는 살인자이고 약탈자다. 이에 대한 보복은 폭력뿐이다.” 세금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뉴스를 되짚어보면서 과연 미국에서만 있는 일일까 생각해 보았다.

서울지방국세청 법무과장으로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결재가 들어왔다. 세금체납자가 빼돌린 재산을 찾아오는 소(訴)를 제기할 것인지 요건검토를 하는 것이었다. 그런 ‘사해행위취소 소송’ 사건을 결재할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피고들이 대체로 경제적 약자인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악의적인 고액체납자는 미리 재산을 다 빼돌리기 때문에 그런 소송에 잘 걸리지 않는다. 감사원에 근무할 때 공적자금을 감사하면서 부실경영주에 대한 사해행위를 검토해봤지만 실효가 없었다. 등기부등본상의 재산을 보면 몇 년 전에 미리 다른 사람에게 이전해 놓은 경우가 태반이었다. 고액체납자들을 사해행위취소 소송으로 재산도피를 막는다는 것은 이길 확률이 적은 게임이다. 제도를 강화하면 할수록 오히려 경제적 약자들만 더 죽이는 꼴이 될 수 있다.

결재를 하면서, 체납자가 아들에게 증여를 했기 때문에 사해행위에 해당된다는 것이었는데 도대체 사해행위 부동산이 얼마짜리인지 물어보았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에 잠시 멍해졌다. “서울 ○○동에 있는 무허가 판자집입니다.” “네? 얼마짜리인데요.” “200만원으로 평가됩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것까지 소송을 해야 합니까?” “일단 공부상에 재산이 나타나면 소송을 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감사에 걸립니다.” 말이 막혔다. ‘감사 때문에’라는 말이 지긋지긋했다. “아무리 감사가 무섭다고 이런 것까지 할 필요가 있습니까?” “….” 그는 묵묵부답이었다. 하긴 직원이 책임 있는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며칠 후 징세과 사무관을 만나 물었다. “이런 사건이 있는데 사해행위취소 소송을 꼭 해야 합니까?” “그런 것까지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안 하면 감사에 걸린다고 하던데요.” 그도 묵묵부답이었다. 하긴 행정을 집행하는 입장에선 굳이 마음을 내서 납세자를 위하는 쪽으로 징수행정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러다가 감사에서 시달리기나 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니 가장 편한 것은 납세자 개인마다의 능력이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자로 잰 듯이 징수행정을 펼치는 것이다.

미국에서 일어난 사건은 납세자의 능력을 초과하는 징세권 남용이 개인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 사람이 남긴 유서에는 ‘빅 브러더 국세청! 나의 살점을 떼가라. 그리고 편히 잠들라’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과거부터 오늘날까지도 세금이나 세무공무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냉정한 징수행정에 있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결국 세금징수의 궁극적인 목적이 국민을 위한 것이니 천편일률적인 ‘묻지마 징수행정’보다는 따뜻한 배려가 있는 행정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물론 지금은 예전과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고성춘 조세전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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