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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어머니의 보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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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9-21 21:27:45 수정 : 2014-09-21 22:3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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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물에게도 모성애는 위대하다. 다 큰 암말 두 마리를 누가 어미인지 가려내는 방법이 있다. 먼저 사흘 동안 아무것도 주지 않고 굶긴다. 그런 다음 두 말 사이에 먹이를 한 그릇만 놓아보라. 반드시 먹이통을 옆으로 밀어놓는 말이 있을 것이다. 그 말이 어미다. 정신없이 먹이통에 달려드는 놈이 있다면 십중팔구 새끼 말이다.

어디 미물의 사랑에 비하랴! 사람에게 어머니란 순도 100%의 사랑 그 자체다. 한국 가곡의 선구자 이흥렬의 성공 뒤에도 어머니의 사랑이 있었다. 일제 치하에서 그는 음악가의 꿈을 안고 도쿄 유학길에 올랐다. 찌든 가난으로 유학생활은 고행의 연속이었다. 졸업이 다가오자 그는 졸업연주에 쓸 피아노를 사지 못해 고민에 빠졌다. 결국 고국으로 편지를 띄운 그는 어머니가 송금한 돈으로 무사히 연주를 마칠 수 있었다.

당시 피아노 가격은 400원이었다. 쌀 한 가마니 값이 10원이던 시절이었으니 요즘 시세로 치자면 700만원쯤 된다. 가난한 형편에 그런 큰 돈이 있을 리 만무했다. 어머니는 빌린 돈을 갚기 위해 매일 솔방울을 따서 팔았다고 한다. ‘나 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이렇게 시작하는 명곡 ‘어머니의 마음’은 지극한 모성 덕택에 비로소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하다지만 우리가 이만큼 사랑의 훈기를 느낄 수 있는 것도 모성애 덕분이 아닐까. 칠순을 앞둔 치매 할머니의 모정이 또 가슴을 적신다. 얼마 전 부산의 한 파출소에 “보따리를 든 할머니 한 분이 동네를 왔다 갔다 한다”는 신고가 들어왔다고 한다. 출동한 경찰이 사는 곳을 물었지만 할머니는 자기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우리 딸이 애를 낳고 병원에 있어요.” 이 말만 되풀이했다. 겨우 수소문 끝에 경찰은 딸이 입원한 병실로 할머니를 모셨다. 딸은 이틀 전 출산한 아기와 함께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할머니는 그제서야 바리바리 싸온 보따리를 풀었다. 다 식어버린 미역국과 나물 반찬, 흰 밥이 들어 있었다. “어여 무라(어서 먹어라).” 치매 와중에서도 자식 사랑의 정신줄을 놓지 않은 모정 앞에 딸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의 사랑은 반짝이는 지상의 별이다. 감동의 샘물을 길어내는 미역국이고 솔방울이다. 어머니의 보따리엔 그런 사랑이 언제나 한가득이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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