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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나의 아픈 문화유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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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9-21 21:26:28 수정 : 2014-09-21 22:3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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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이 글은 ‘나의 아픈(!) 문화유산 답사기’다. 그간에 듣고 읽은 풍월로 나름의 코스를 짰고, 지난 주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시작했다.

‘거돈사 원공국사 승묘탑’(보물 190호)은 국립중앙박물관 석조물 공원에 있다. “강원도 원주 거돈사터에는 이 승탑과 짝을 이루는 원공국사 탑비가 있다”라는 안내 문구가 눈에 띄었다. 다음 목적지는 숭례문. 지난해부터 이어진 부실 복구 논란이 머릿속에 가득해 ‘국보 1호’란 위엄이 되레 씁쓸했다. 버스를 타고 국립고궁박물관으로 향했다.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국보 101호)은 원래 강원도 원주 법천사터에 있던 것인데 “1912년 일본인이 몰래 일본으로 가져갔다가 발각되어” 1915년에 되돌려받았다. 탑의 곳곳에 시멘트를 땜질용으로 발라두었다. 국립고궁박물관 바로 옆은 경복궁(사적 117호)이다. 그 가장 깊은 곳의 건청궁 옆에 자선당의 기단과 주춧돌로 된 유구가 있다. 세자 거처로 쓰였던 자선당의 사연은 슬프다. 오쿠라 기하치로란 자가 자선당을 해체해 1914년 일본의 자기 집으로 가져간 뒤 ‘조선관’이란 이름을 붙이고, 미술관 건물로 사용했다.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소실됐고, 기단과 주춧돌만 남아 있던 것을 1993년에야 우리 학자가 발견해 2년 후 환수했다.

강구열 문화부
경복궁을 나오면서 ‘찬란한 문화재’란 말을 떠올렸다. 유구한 역사와 민족의 우수성을 증거하는 문화재는 찬란하다. 문화재 사랑이란 찬란함을 확인하고, 감탄하는 걸로 흔히 이해된다. 하지만 감탄만 하기엔 아픈 문화재들이 많다. 국립중앙박물관부터 경복궁까지 이동시간만 따지면 1시간이 채 안 된다. 길지도 않은 그 길에 상처 입은 문화재들이 줄을 섰다.

아픔을 아는 것도 문화재 사랑이다. 하지만 잘 알지를 못한다. 무관심하기 때문일 터다. 아픔을 알리는 데 소홀하거나 무성의한 문화재 당국의 책임도 크다. 수백년간 짝을 이뤘던 탑비와 떨어져 타향살이를 하게 된 게 일본인의 욕심 때문이란 걸 승묘탑 안내석에 밝혀놓아야 한다. 현묘탑에는 6·25전쟁 당시 포탄에 맞아 지붕돌이 산산조각 났던 사실을 더하고, 경복궁에는 자선당 유구의 존재를 알리는 안내를 늘렸으면 싶다. 안내판에 관련 정보를 시시콜콜 늘어놓으라는 게 아니다. 한 문장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것이 관람객들의 관심을 환기시킬 수 있다.

문화재의 아픔은 힘없고, 못살던 시절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지금도 관리 소홀과 부주의로 신음하는 문화재는 많다. 숭례문이 그렇다. 해마다 6개월 이상 물에 잠기며 심각한 훼손을 입은 반구대 암각화(국보 285호)는 어떤가. 훗날 누군가는 암각화를 21세기 문화재 수난의 대표적 사례로 꼽을 것이 틀림없다. 지난달 발표된 문화재 점검 결과를 보면 지정·등록문화재 가운데 23%는 관리·보존상태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아픈 문화재가 이렇게 많다. 그 아픔을 아는 데서 문화재 사랑은 깊어진다.

강구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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