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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은 교도소와 지옥 사이에서 지옥 편에 더 가까웠다.” 일제 시기 중국전선에서 5년간 복무한 일본군 병사 모리가네 센슈의 말이다. 일본군 병영을 지옥으로 만든 건 구타와 가혹행위였다. 구타의 고리는 상급 장교에서 하급 병사까지 연결돼 있었다. 탈영과 자살이 속출했지만 일본군은 병사들의 충성심을 고양하고 통제한다는 명목을 내세워 구타를 묵인했다. 역사상 이처럼 잔혹한 군대도 없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의 회고담이다. 그가 해군 경리장교로 임관해 자대로 가자 상급 장교가 부하 지휘법을 강의했다. 그런데 그 강의 내용이 어이가 없어 놀랐다고 한다. 상급 장교는 나카소네와 동기들을 한 줄로 집합시킨 뒤 주먹으로 뺨을 구타하면서 “이것이 하급자를 다루는 법”이라고 했다고 한다. 해군에는 ‘군인정신 주입봉’이라는 구타 전용 몽둥이까지 있었다니 말해서 무엇하랴.

광복 후 많은 일본군 출신 장교들이 한국군에 합류했다. 일본군 악습이 이식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 간부들 간 구타와 가혹행위도 마찬가지였다. 필자의 군복무 시절 소대장이 전술훈련을 나가 100km 행군을 하다 낙오했다. 관절염이 도져 완주를 못하고 차량을 타고 이동했다. 장교에게 이보다 굴욕적인 일이 또 있을까.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장교의 명예를 떨어뜨렸다”는 이유로 상급 장교들에게 매타작을 당한 것이다. 밤늦게 텐트로 돌아온 소대장의 엉덩이에는 호빵 서너 개 크기의 시커먼 멍이 들어 있었다. 야삽으로 맞았다고 했다. 진통소염 연고를 발라주는 동안 소대장은 끙끙 앓는 소리를 했다. ‘이 모습을 우리 어머님이 보면 얼마나 속이 상하실까’라고 독백하던 그의 슬픈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특전사 부사관이 후임 2명의 입에 휴대용 발전기 전선을 물리는 전기고문 방식의 가혹행위를 해 구속됐다. A중사는 임무를 잘 숙지하지 못하고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는 이유로 하사 2명에게 전기충격을 가했다. 일본군도 아니고 어찌 이렇게 잔혹할 수가 있나. 국방부는 병사들의 구타와 가혹행위 근절을 위해 묘안을 짜내고 있다. 동기 생활관 운영, 구타 및 가혹행위 신고 포상제와 같은 많은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간부들의 폐습을 고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일 것이다. 윗물이 흐리면 아랫물은 절대 맑아질 수 없다.

김환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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