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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학살의 비극 “아! 어찌 잊으랴”

입력 : 2014-09-19 21:22:58 수정 : 2014-09-20 00: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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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민간인 희생 다룬 책 출간
정은용 원작/박건웅 만화/보리/3만원
노근리 이야기1 - 그 여름날의 기억/정은용 원작/박건웅 만화/보리/3만원


가면권력/한성훈 지음/후마니타스/2만3000원

114만명. 언뜻 보기만 해도 엄청난 크기임이 느껴지는 이 숫자는 6·25전쟁에서 집단학살로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피해자의 규모다. 울산시의 인구가 115만명이니 광역시 하나만큼의 인구가 불과 3년 동안 집단학살로 희생됐다는 뜻이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전선에 영향을 미치는 세력이나 집단이 아닌 평범한 이웃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공산주의자나 좌익으로 ‘의심’된다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했고, 때로는 전쟁의 편의를 위해 아군이 자기 진영의 민간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이 114만명의 속에는 ‘노근리 민간인학살사건’의 희생자 300여명도 포함돼 있다. 1950년 7월 충북 영동군 노근리 철교 밑 터널 속칭 ‘쌍굴다리’ 속에 피신하고 있던 인근 마을 주민 수백 명을 향해 미군이 무차별 사격을 가해 살해한 사건이다. 1960년 유족이 제기한 소청이 미군 소청심사위원회에 의해 기각되면서 사건은 그대로 역사 속에 묻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994년 정은용 노근리양민학살대책위원회 위원장이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라는 실록 소설을 출간하면서 사건이 다시 일반에게 알려지게 됐고 이로 인한 사회적 반향이 5년 후인 1999년 AP통신 보도로 이어져 세계적 파문으로 이어졌다. 꿈에서라도 잊고 싶은 참혹한 비극을 잊지 않고 똑바로 직시한 소설 한 권으로 인해 지금 우리가 이 사건을 알고 있는 셈이다.

6·25전쟁 중 110만명이 넘는 평범한 이웃들이 집단학살로 죽음으로 몰렸다. 사진은 6·25전쟁 중 대표적 집단학살 사건인 노근리민간인학살사건을 만화로 옮긴 ‘노근리 이야기1 - 그 여름날의 기억’ 중 한 장면(왼쪽)과 사건 현장인 충북 영동군 노근리 ‘쌍굴다리’의 모습.
보리 제공.
세계일보 자료사진
‘노근리 이야기1 - 그 여름날의 기억’은 이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를 원작으로 한 만화다. 아무 이유도 없이 죽임을 당한, 심지어 자신이 왜 죽는지조차 모르고 죽었던 민초들의 참혹한 이야기에 마음을 울리는 그림을 얹어 만화가 박건웅이 2년여 작업 끝에 완성했다. 2006년 출간된 책을 그림 등을 보강해 새로 펴냈다.

만화가 그리고 있는 사건은 한마디로 끔찍하다. 생존자들의 증언 등을 통해 오롯이 피해자의 시선으로 기록된 책에는 미군들이 피난민들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학살이 시작될 때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모습, 쌍굴 안에서 처참하게 죽어 간 사람들의 모습과 목숨을 지키려는 처절한 몸부림이 그림과 함께 생생하게 담겨있다. 실화와 증언을 바탕으로 그린 실제 일어났던 일임에도 차마 믿어지지 않을 만큼 참혹한 장면들이 이어진다. 박건웅의 서정적인 그림체로 그려지는 비극을 통해 전쟁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죄 없는 사람들의 삶에까지 영향을 끼치는지 사뭇 느낄 수 있다. .

한성훈 지음/후마니타스/2만3000원
‘노근리 이야기1 - 그 여름날의 기억’이 전쟁 중 벌어진 집단학살의 비극을 감정적으로 접근했다면, ‘가면권력’은 이성적으로 사건을 추적하고 분석한 책이다. 노근리사건과 함께 6·25전쟁 중 대표적 민간인 집단학살로 꼽히는 국민보도연맹 사건과 경남 거창민간인학살사건을 다룬다. 2009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발표한 두 사건의 희생자는 국민보도연맹사건 4934명, 거창사건 719명에 달한다.

책은 이들 두 사건을 전후 사실관계부터 지금까지의 경과, 사회인문학적 의미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으로 들여다봤다. 6·25전쟁 발발 전후부터 이후 유족들의 활동, 5·16 군사정변에 따른 진상규명 좌절, 1987년 민주화 이후 관련 시민단체 결성과 활동, 2005년 시작된 진실화해위 조사와 진상규명 과정,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법원 소송까지를 다룬다. 의문사진상규명위와 진실화해위에서 활동한 한성훈 연세대 교수의 저작으로, 실제로 진상규명에 참여한 이가 쓴 책답게 사실관계의 충실한 기록뿐 아니라 가해자·피해자·생존자·유족의 증언까지 풍부하게 수록했다.

특히 책은 대량학살에 대한 ‘불처벌 문화’에 의문을 던지며 군대나 경찰 같은 국가기구가 벌인 만행에 대해 명령을 내린 자와 국가가 책임을 지는 것이 왜 중요한지 역설한다. 범죄에 대한 합당한 사법절차를 거쳐 가해자를 처벌해야만 국가공동체가 그 성원에게 무엇이 정의인지, 또 어떻게 정의를 실현할 것인지 제시할 수 있으며 국가는 그럴 의무가 있다는 것. 참혹한 비극을 분석한 뒤에 따르는 저자의 이 같은 일침이 매우 아프게 다가온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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