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이혜선의 한주의 시] 남쪽의 달 북쪽의 달 하나되는 그날은…

입력 : 2014-09-18 21:23:47 수정 : 2014-09-18 21:32:23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추석 달을 보며/ 문정희

그대 안에는
아무래도 옛날 우리 어머니가
장독대에 떠놓았던 정한수 속의
그 맑은 신이 살고 있나 보다.

지난 여름 모진 홍수와
지난 봄의 온갖 가시덤불 속에서도
솔 향내 푸르게 배인 송편으로
떠올랐구나.

사발마다 가득히 채운 향기
손바닥이 닳도록
빌고 또 빌던 말씀

참으로 옥양목 같이 희고 맑은
우리들의 살결로 살아났구나.
모든 산맥이 조용히 힘줄을 세우는
오늘은 한가윗날.

헤어져 그리운 얼굴들 곁으로
가을처럼 곱게 다가서고 싶다.

가혹한 짐승의 소리로
녹슨 양철처럼 구겨 버린
북쪽의 달, 남쪽의 달
이제는 제발
크고 둥근 하나로 띄워 놓고

나의 추석 달은
백동전 같이 눈부신 이마를 번쩍이며
밤 깊도록 그리운 얘기를 나누고 싶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그림=화가 박종성
한가윗날 밤에 달을 봤다. ‘지난 여름 모진 홍수와/ 지난 봄의 가시덤불 속에서도’ 푸르게 살아 남아, 기울어지던 몸에 날마다 밤마다 살을 붙여 ‘솔 향내 푸르게 배인 송편으로’ 떠오른 달. 저 달은 그리운 가족들, 헤어졌던 부모 형제 친척들과 함께 바라보라고 저 높은 하늘에 저리 푸르게 떠올라 있다. 그 달 안에는 어머니가 새벽마다 집 떠난 자식을 위해 장독대에 정화수 떠 놓고 손이 닳도록, 허리가 휘어지도록 절하며 빌고 빌던 ‘그 맑은 신’이 살고 있다. 헤어져서 그리던 그 얼굴들 곁으로 가서 함께 행복한 눈으로 올려다보라고 저리 휘영청 맑은 하늘에 떠올라 있다.

그러나 우리 민족에게 저 달은 ‘녹슨 양철처럼’ 구겨진 달이다. 그 누가 저 달을 ‘북쪽의 달, 남쪽의 달’로 나누어 반쪽으로 갈라놓았을까? 언제면 저 반쪽의 달을 ‘크고 둥근 하나로 띄워 놓고’ 우리 모두 둘러앉아 ‘밤 깊도록 그리운 얘기’ 나눌 수 있을까?

‘남쪽의 달, 북쪽의 달’이 손잡고 더 크게 떠올라 환히 웃을 그날을 그려본다.

이혜선 시인·문학평론가

<세계섹션>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