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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정의 공연 돋보기] 파우스트를 구원으로 이끄는 그레트헨

입력 : 2014-09-18 21:48:05 수정 : 2014-09-18 21:4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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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것을 얻게 해준다며 유혹해오는 악마의 제안을 망설임 없이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무리 하늘에 대고 기도해도 응답을 듣기 힘들 때, 사람들은 간단하고 손쉬운 답을 찾게 마련이니. 어쩌면 수많은 선택 상황 앞에서 이미 여러 형태의 악마에게 영혼을 내맡기며 살아오고 있지는 않은가. 괴테의 ‘파우스트’가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는 것은 그만큼 공감대를 형성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은 악마와 계약을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받기 때문 아닐까. 만일 파우스트가 결국 영혼을 악마에게 내어주고 지옥에 떨어져야 했다면 그저 도덕성을 강조한 권선징악적 작품으로 인식되었을지 모른다. 파우스트 전설은 다양한 작가에 의해 극화되었는데, 그중 괴테의 작품은 구원의 결말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수 있다.

이때 파우스트를 천상으로 이끄는 것은 그레트헨이라는 여성이다. 그녀는 파우스트에게 버림받고 죽음에 이르게 되는 비련의 여주인공인데 말이다. 사실 여성의 입장에서 온갖 편력을 다 행해놓고는 결국 여성을 통해 구원받는 남자 주인공의 모습이 그리 유쾌하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그렇지만, 파우스트의 말미에 등장하는 유명한 대사처럼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영원한 여성성”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이는 이성이 강조된 문명사회에서 억압되어 온 여성성과도 연관된다. 이러한 그레트헨은 제도권 사회에서 희생되는 약자이며 타자이기도 하다. 그녀는 아이를 죽인 영아살해범으로서 처형된다. 피해자에게 오히려 더욱 무거운 형벌이 가해진 형국이다. 이는 당시 영아살해범이면 무조건 처형되었던 상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럼에도 희생자인 그녀가 파우스트를 구원하게 된 것은 물론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행동은 단지 남녀 간의 애정을 벗어나 범인류적인 자비와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더 데빌’에서 그레트헨은 X에게 영혼이 잠식당한 존 파우스트를 구원으로 이끈다.
뉴욕 월스트리트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뮤지컬 ‘더 데빌’은 파우스트 모티프를 취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존 파우스트는 X라는 악마에게 영혼을 잠식당한다. X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과 대적하고 있는 ‘물신’을 상징하는 존재라고 볼 수 있다. 모든 것을 교환가치로 수치화하는 요즘 X는 존에게 최고의 부와 권력을 손에 쥐어줄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그레트헨은 X가 돈의 맛에 길들어지며 황폐해가는 모습에 몸서리치며 괴로워한다. 이 작품에서 그녀는 한 남성을 사랑하는 여성이기도 하지만, 말살되어가는 인간성을 상징하는 존재로도 해석해볼 수 있다.

괴테의 작품에서 파우스트는 특히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지식욕에 시달리다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 덕분에 젊음을 얻고 많은 일들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파우스트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졌다는 점에서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인간형으로도 이야기된다. 어떻게 보면 파우스트가 구원을 받게 되는 것도 끊임없이 추구하고 노력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를 구원 받게 하는 것은 음지에 감춰져 있는 그레트헨이라는 존재임을 떠올려 본다.

현수정 공연평론가·중앙대 연극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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