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성적 자유 갈구했던 조선여인의 ‘또다른 민낯’

입력 : 2014-09-18 19:42:41 수정 : 2014-09-18 19:42:41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김별아 신작 장편소설 ‘어우동, 사랑으로 죽다’
소설가 김별아(45)가 ‘조선 여인 3부작’을 완결했다. 조선시대에 성적 자유를 추구했던 여인 3명을 스스로 뽑아 그들의 삶의 이면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소설에 담아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분방하고 당대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여인을 담은 ‘어우동, 사랑으로 죽다’(해냄)가 그 완결판이다. 어우동에 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 16번이나 등장하는데 작가는 그 짧은 기록들의 행간을 채워내면서 그네를 새로운 여인으로 재창조해낸 셈이다.

‘조선 여인 3부작’을 끝낸 소설가 김별아. 그는 이제 조선시대에서 돌아와 기업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어우동이 문제적 인물이었던 이유는 그네가 계급과 신분을 가리지 않고 많은 남정네와 정을 통한 것 자체도 충격이지만, 그러한 행실을 보여준 그네의 신분이 왕실의 일가붙이였다는 사실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이즈음 사람들에게는 1970년대 말 일간지에 방기환이 연재했던 소설로 부각됐다. 이후 이장호 감독이 안성기 이보희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 여인의 행각은 다시 전파됐다. 이번에 김별아가 재조명한 어우동은 남성 작가와 감독의 시각이 아니라 여성의 입장에서 어우동의 욕망을 탐구했다는 점이 다르다.

“세종 며느리 순빈 봉씨의 동성애나 간통을 한 사대부의 아내 유씨를 넘어서는 가장 문제적 여성이 어우동이었습니다. 어우동의 욕망은 그 자체보다도 사회적 배경을 탐색해 봐야 할 소지들이 많습니다. 그네의 욕망은 저도 다 모르지만 탐험가로서의 열정이 좋습니다. 여자든 남자든 끝까지 가는 인물에 끌리는 편입니다.”

김별아를 매혹한 어우동은 과연 어디까지 달려나갔는가. 기록에 등장한 남자만 16명이었으니 작금의 잣대로 보아도 대단한 측면이 있다. 아비는 고관대작이요, 어미는 부유한 집안의 귀부인, 오라버니는 귀공자였다. 겉으로 보기엔 선망의 대상인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엉망진창인 성장환경이었다. 아비는 눈 하나가 멀어 성정이 거친 아내에게 병신 소리를 들었고, 오라비는 어미의 ‘간통’을 거짓으로 누설했다 하여 평생 미친놈 취급을 받았다. 후일 어우동이 교수형을 당한 뒤 오라비는 노비를 시켜 어미를 살해하기까지 한 콩가루 집안이었다.

어쨌든 왕실의 종친에게 시집갔던 어우동은 기생에 빠진 남편이 그네를 내쫓는 바람에 잠시 친정에 가 있다가 길가의 집을 얻어 독립한다. 그 공간에서 여종 ‘장미’를 매개로 본격적인 성애에 빠져든다. 문신 무신 가리지 않았고 양반과 중인을 따지지 않았다. 이들의 교합을 묘사하는 김별아의 문장이 압권이다. ‘이기’라는 사내와의 정사 장면.

‘뜨거운 혀가 하얗게 펼쳐진 그녀의 설원을 낱낱이 누볐다. 몸이 달아오르며 응달에 쌓였던 눈까지 스르르 녹였다. 이기의 배죽한 코끝이 젖꽃판을 간질였다. 젖꼭지가 놀라 바짝 곤두섰다. 그에게 둘인 것은 그녀에게도 둘이요, 그에게 하나인 것은 그녀에게도 하나였다. 같고도 다른 둘이 맞닿고, 달라서 같은 하나가 맞물렸다. 낯설게, 낯설어 더욱 짜릿하게.’

어우동과 동침한 남자들은 작가 김별아의 눈에는 욕망이 왜곡 당한 불쌍한 사내들이었다. 나중에 어우동이 잡혀가 통정 사실을 밝혔을 때 순순히 인정하는 남자는 그중에서도 한 명뿐이었다. 그 남자마저 시간이 지나 삭탈당했던 작위를 돌려받았고 나머지는 아무런 문제 없이 승승장구했다. 오직 어우동만 교수형으로 죽었다.

‘채홍’ ‘불의 꽃’에 이어 조선여성 3부작을 마무리한 김별아는 “순빈 봉씨, 유씨, 그리고 어우동은 그 빛깔은 조금씩 다르되 결국 조선에서의 금지된 ‘사랑’의 죄를 지어 국가 권력에 희생당한 여성들”이라며 “봉빈의 동성애와 유씨의 간통이 폐쇄와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생존형’이라면 어우동의 난봉은 사뭇 당돌성이 도드라진 의도된 ‘모험형’”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사내들을 ‘사냥’한 어우동의 모험은 우리가 몰랐거나 혹은 외면하고 거부했던 조선 여성의 또 다른 민낯”이라며 “그녀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고 나긋나긋하게 살지 않았을뿐더러 또한 누구도 그렇게 살 수 없다”고 작가의 말에 썼다.

김별아가 그려낸 ‘어우동’을 읽다 보면 어우동의 불우한 성장환경, 학대받은 ‘내면의 아이’에 대한 연민이 커진다. 실록의 기록을 꼼꼼히 검토하고 그 행간을 메운 노고의 흔적이다. 그네가 찾아나섰던 쾌락보다도 당대의 사회에 대한 오기와 조롱이 더 부각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김별아는 “세상의 모든 빛깔을 품은 채 검지만 검지 아니할 것”이고 “검지 아니하며 검을 수 없다”고 어우동에게 ‘현비(玄非)’라는 별명을 바쳤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