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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캐디가 가슴 아닌 모자에 이름표 다는 이유…

입력 : 2014-09-16 19:49:22 수정 : 2014-09-29 18:4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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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의 경기보조요원인 ‘캐디’의 인권은 사실상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법적으로 성추행에 해당하는 짓궂은 농담이나 신체 접촉도 골프장에서는 예외로 친다. 묵인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골프장 측에서는 고발이나 하소연을 듣고서도 이렇다 할 조치를 할 수 없다. 그냥 다른 여성으로 교체해 경기를 진행할 수밖에 없는 게 상례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 사례의 경우 캐디 쪽 항의가 있었지만 다른 사람으로 교체해 계속 경기를 진행했다고 한다. 가뜩이나 어려운 골프장 경영에다 이런 얘기로 문제 될 경우 손님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비록 일부 골프장의 일부 골퍼에 한정된 사례이지만 골프장이 여성 인권의 사각지대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동 중 손님들이 카트, 즉 전동차에서 허벅지를 만지고 옆구리 찌르는 일은 흔한 일이고 은근슬쩍 가슴을 만지는 경우도 많아요.”

경력 11년의 캐디 김모(38)씨는 손님들이 첫 홀에서 티오프를 하는 사이 가슴에 달게 돼 있는 이름표를 모자로 옮겨 달곤 한다. 손님들이 “이름이 뭐냐”며 이름표에 손을 대면서 가슴을 접촉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골퍼들이 라운딩 중에 “몇 살이야? 알 거 다 알면서 뭘?”이라는 말로 시작한다고 전했다. 시종일관 성과 관계된 말로 캐디들을 곤혹스럽고 역겹게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경기 지역 골프장에서 일하는 20대 초반 여성의 말은 적나라한 성추행 사례다. 50대 후반의 남자 골퍼가 퍼터를 건네며 “내가 구멍에 넣는 거 하나는 자신 있는데 낮이라 그런지 아가씨가 예뻐서인지 잘 안 들어가네”라는 말에 이 캐디는 숙소에 돌아와 펑펑 울다가 캐디를 그만뒀다고 한다.

경력 8년의 캐디 고모(32)씨는 어린 나이에 캐디 생활을 하다 손님들의 짓궂은 장난과 성적 모욕감, 폭언, 힘든 근무여건 등에 일을 포기했다. 고씨는 3년간 다른 일을 했지만 이만 한 벌이가 없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최근 다시 골프장에서 일하고 있다. 일부 골프객은 여성 캐디의 브래지어 끈을 잡아당겼다가 놓는 등 대놓고 성희롱을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

순천시 조곡동에 사는 김모(36)씨는 “생활 형편이 어려워 어쩔수 없이 캐디 일을 했는데, ‘홀에 볼을 잘 넣어야 밤일도 잘한다’는 등의 성희롱이 심해 지금은 나가지 못해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 난감하다”고 했다.

한국여성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문모(22)씨는 “등이나 허벅지를 만지는 희롱은 기본이다. 단골 손님은 만날 때마다 전화번호를 요구하면서 저녁에 만나자는 등 괴롭힌다”고 하소연했다.

골프장 경기진행직원 박모(53)씨는 “골프장 곳곳에서 골프객들의 성희롱 추태를 볼 때마다 울화가 치밀지만 회사 입장 때문에 참아야 하는 심정이 정말 괴롭다”고 했다.

그러나 골프장 측은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가 없다. 언행이 불량하거나 신체접촉이 잦은 회원은 ‘요주의 회원’으로 분류해놓고 대응력 있는 여성 캐디나 남자 캐디를 배정하는 게 유일한 대책이라는 것. 강원도 춘천시 한 골프장에서는 성희롱 사례가 빈발하지만 마땅한 대응을 못하고 있다. 캐디를 성희롱하는 골퍼들은 대부분 단골인 데다 골프장 사장 등의 지인이 다수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성희롱이 발생하면 캐디 마스터가 해당 팀에 출동해 자제를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성희롱으로 인한 고소 고발은 엄두도 못 내는 것이 골프장의 현실이다.

한 골프장 관계자는 “요즘은 캐디들이 성희롱이나 추행을 참아왔지만 최근에는 적극적으로 항의하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라운딩 도중 신체접촉이나 성추행이 심하면 캐디들 스스로 교체를 요청해 아홉 홀 이후엔 대부분 교체한다. 하지만 손님들의 사과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캐디가 불친절하다며 항의한다고 골프장 측은 하소연한다.

춘천·천안·순천=박연직·김정모·한승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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